보내는 기사
트럼프 당선이 '프로불편러' 때문이라고?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매캐한 최루가스가 대학 캠퍼스에 퍼졌다.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학생들이 긴 나무막대기로 유리창을 깨부쉈다. 사방에서 고무탄이 날아다녔고, 경찰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19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연상되는 이 장면은 지난 2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학교의 시위 모습이다. 이날 시위는 트럼프 지지세력 ‘알트라이트(Alt-rightㆍ대안우파)’의 대표적 인사인 보수언론 브레이브바트(Breitbart)’ 기자 밀로 이아노풀로스의 학내 강연에 반대해 열렸다. 버클리대 재학생들은 인종ㆍ여성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이아노풀로스의 강연이 학내에서 열리면 안 된다며 “Shut Him Down(그를 취소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결국 이날 오후 6시쯤 대학이 강연을 취소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버클리 시위는 ‘소셜저스티스워리어(SJW)’ 의 만행일까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 사회에선 시위대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아노풀로스를 초청했던 버클리대 공화당 학생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그들(시위대)의 행동은 생각과 이념을 공유하는 미국 대학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강연 취소 당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버클리가 다른 생각을 가진 순수한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면 연방정부 자금지원은 없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비판은 결국 ‘버클리대 시위는 SJW의 횡포’라는 문장으로 귀결된다. SJW는 ‘소셜저스티스워리어(Social Justice Warrior)’의 약자로, 주로 인종ㆍ젠더ㆍ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뜻한다. 미국판 ‘프로불편러’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질렸어, 너희 때문에
SJW는 원래 사회운동가를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미국 특유의 문화 속에서 과격한 사회운동가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탈바꿈됐다.
전환점은 2014년 말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이어진 반 인종차별 시위다. 2014년 8월 비무장상태이던 흑인소년 마이클 브라운(당시 18세)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뒤 시작된 이 운동은 #BlackLives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이후 인종을 넘어 문화적ㆍ성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까지 확산됐다.
하지만 익명에 기대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과정에는 대중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유색인종(colored)’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2015년 컴버배치가 미국 PBS방송의 토크쇼에 출연해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은 이 단어를 사용하자 삽시간에 비난이 쏟아졌다. 문제는 그가 영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이 단어를 썼고, 백인 외에 다른 인종을 지칭할 대체어가 없어서 해당 단어를 택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색인종을 존중하기 위해선 백인을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melanin challenged) 인종’이라 불러야 하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목소리가 오히려 타인의 입을 막는다는 지적이다. SJW의 반작용이 드러난 장면이다.
SJW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됐다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SJW의 집착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는 2015년 8월 폭스뉴스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출연해 “이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말하는 등 대선 출마 초부터 이민과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생각을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사람들이 여기에 열광하고 결국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한 것은 SJW와의 격렬한 논쟁의 반작용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트럼프 당선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자주 제기됐다.
반면 언론학자인 모이라 와이겔은 가디언을 통해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오히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SJW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와이겔은 “1991년 부시 대통령도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고 비판했지만, 트럼프가 자신의 말할 권리를 행사한다며 ‘멕시코 이민자들은 강간범’이라고 말한 것마냥 특정인들을 직접적으로 지칭해 비난하진 않았다”고 지적한다. 과거 어느 대통령 후보보다도 과격한 트럼프의 언행이 계속됐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한 형태의 SJW의 반발이 나왔다는 것이다.
불관용은 불관용을 낳는다
버클리 시위에서도 그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듯한 현장 증언이 나오고 있다. 버클리대 1학년생인 말리니 라마이어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수요일(1일)까지 시위는 평화로웠지만,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소리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시위가 과격해졌다”며 “이아노풀로스의 지지자와 그를 반대하는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와이겔은 트럼프 신드롬을 언급하며 “타인의 의견을 관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의식적 노력을 그만둘 때 사회적 갈등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미국 사회의 교훈은 프로불편러를 비롯한 소수의 사회적 문제제기에 관용하지 않는 우리사회 단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