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760곳 고쳤다지만… ‘박정희 미화’는 손도 안댔다

입력
2017.01.31 20:00

박 전 대통령 관련 9쪽 ‘압도적’

YSㆍDJㆍ노무현은 2쪽 분량 그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간사가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최종본 발표와 관련한 민주당-국민의당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종본 교과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간사가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최종본 발표와 관련한 민주당-국민의당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종본 교과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31일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던 국정교과서 최종본과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공개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은 다소 완화했지만, 국정교과서 최종본은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나 박정희 정권 미화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전혀 물러서지 않은 탓이다.

국정교과서가 소수 의견 되나

대한민국 건국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는 현대사 기술에서 보수ㆍ진보 진영간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던 부분이다. 보수진영은 “1948년 8월15일을 단순히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수립된 날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반면, 이날을 건국시점으로 본다면 1919년 3ㆍ1 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이후 벌어졌던 독립운동 역사를 모두 부정하는 것인 만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적절한 표현이라는 게 진보진영 입장이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는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기존 보수진영 입장을 관철하되, 검정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도 병기하거나 혼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 유의한다’는 유의점을 집필기준에 추가한 것이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제시된 것이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었다”며 “어떤 한 의견을 따라가기 쉽지 않아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검정교과서 역시 ‘대한민국 수립’을 그대로 쓰거나 최소한 병기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그 기대대로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행 검정교과서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다수는 이 표현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이 오히려 소수 의견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 및 검정도서 집필기준을 발표한 31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이 고등학교 자습서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 및 검정도서 집필기준을 발표한 31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이 고등학교 자습서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760건 바꿨다지만…

또 다른 논란거리였던 ‘박정희 정권 미화’ 부분도 국정교과서 최종본에서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우선 박정희 정부에 대한 서술이 9쪽으로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도 분량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9쪽 중 4쪽은 경제개발 내용을 소개했고, 5쪽은 정치적 공과를 담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4쪽),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각 2쪽)에 비해 압도적인 분량이다. 유신독재와 안보위기의 연계, 5ㆍ16혁명공약 등 문제의 내용들도 그대로 담겼다. 노희창 배재고 교사는 “전체 분량 배분을 봤을 때 현대사 부분의 주인공은 박정희”라며 “경제 개발을 강조했을 뿐, 유신에 대한 과오는 교묘하게 숨겨놨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수정 의견을 반영한 부분도 적지 않다. 제주 4ㆍ3 사건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해 제주 4ㆍ3 특별공원에 안치돼 있는 희생자의 위패 관련 내용을 수록했고, 광복 이후 추진된 반민특위 활동에 대해 ‘친일파 청산은 미진했다’는 한계를 기술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서술도 ‘수요 시위 1,000회를 기념하여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는 등이 새롭게 추가됐다. 반면, 지나치게 미화됐다는 비판을 받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일화는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을 추진했다‘는 등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교체했다. 또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에는 대한민국 건국 시점 외에 ▦제주 4ㆍ3 사건 당시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다는 점 ▦새마을운동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었다는 점 ▦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로서 분쟁지역이 아니라는 점 등을 유의점으로 담았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강행과 국ㆍ검정 혼용이라는 근본적 한계는 넘기 힘든 벽이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국정교과서 최종본의 수정 사항이 760건인데 이중에는 의견 수렴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현장검토본의 오류로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 교과서를 보급하기 위해 시간에 쫓겨 만든 흔적”이라며 “새 집필기준에 따른 검정교과서는 5, 6개월 안에 집필해야 하는데 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양산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ㆍ최종본 달라진 주요 내용 /2017-01-31(한국일보)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ㆍ최종본 달라진 주요 내용 /2017-01-31(한국일보)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