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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서 “누구에게도 차별 없는 세상” 외치다

입력
2017.01.2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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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무시하기에 우린 너무 강하다!”

“차이를 찬양하라 그것이 민주주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하루 뒤인 지난 21일 오후 2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 함박눈이 내리는 강남대로를 2,000여명의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번 행진은 트럼프 정권의 취임과 함께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여성행진(The Women's March)에 연대한 ‘자매행진’이다. 같은 날 전세계적으로 670여건의 여성행진이 있었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 벌어진 '여성행진'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 벌어진 '여성행진'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세계적으로 벌어진 여성행진에서는 ‘반 트럼프’만 외친 것이 아니다. 인종과 젠더, 노동과 시민권 등 사회 다층적인 범위에서 여성인권 바로 세우기를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포스트잇으로 표출됐던 강남역 10번 출구와 인근이 행진장소로 결정됐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주한 미국인뿐 아니라 영화계 내 성폭력, 로리타 복장 논란, 여성 게이머 차별 등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 논쟁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단체와 개인들도 이번 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인종과 젠더 등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혐오 정권’의 대표적인 사례인 트럼프 정권의 등장에 반발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벌어진 여성행진에 외국인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벌어진 여성행진에 외국인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주체적인 여성상을 노래하는 비욘세의 곡 ‘런더월드(Run the world)’에 맞춰 강남대로를 행진하고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우린 더이상 빼앗기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쳤다. “싸우는 퀴어가 나라를 정의롭게” “싸우는 장애인이 나라를 바꾼다” “노동자에게 평등한 나라를 원한다”등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노동과 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크게 울려 퍼졌다.

국내에서 연달아 불거진 페미니즘 이슈로 바빴던 지난해를 보낸 행진 참가자들은 올해에도 끊임없이 이와 관련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10월 ‘영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시작한 페미니스트 영화인 단체 ‘찍는 페미’의 박효선씨는 “영화계의 일부 사람들은 영화를 노동의 관점이 아닌 예술로만 바라본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해도 ‘약해빠져서 영화 어떻게 찍을래’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박씨는 “하지만 영화계 종사자에게 이는 일터에서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 못 받는 문제”라며 “영화계는 임금체불은 물론 여성, 약자를 향한 폭력과 혐오가 너무 심한 남초사회이기 때문에 현재 영화계에서 인간답게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일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말했다.

동화적이고 고전적인 풍의 드레스 등의 ‘로리타 패션’을 즐기는 여성들이 만든 페미니즘 단체, ‘로리타펀치’의 김과자씨는 “여성들에 대한 여러 가지 억압 중 겉모습에 대한 억압이 특히 심한 편이다. 어떤 옷을 입으면 개인이 아닌 옷이 가진 이미지로 평가 당하기 일쑤”라며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한 개인으로 존중 받고 싶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행진도중 눈발이 거세졌지만 중간에 시민들이 참가하면서 행진 인원은 더욱 불어났다. 시위대가 지나가자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주최측은 처음 행진에 참여하기로 등록한 인원은 450여명이었지만 실제 참가자는 2,000여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스페인, 영국 등 전역에서 트럼프 정권 출범을 맞아 여성들의 강력한 연대를 보여주기 위한 여성 행진이 잇따라 열렸다. 특히 미국에서는 수도 워싱턴에서만 50만 명이 참가했으며 전국에서 330만명 이상이 행진에 참가했다.

미국의 팝 가수 마돈나는 워싱턴에서 열린 여성행진에서 무대에 올라 “사랑의 혁명에 동참한 것을 환영한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폭압의 새 시대를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며 “우리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혼자도 아니며,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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