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손님, 주문하신 아반떼 나왔습니다!"

입력
2017.01.19 08:54
카셰어링에 공유자로 참여하는 첫발 내딛기.
카셰어링에 공유자로 참여하는 첫발 내딛기.

드디어 우리가 탈 차를 받는 날이다. 직접 날인하지는 않았지만 전자 계약서를 쓰고 서류를 보낸 뒤 며칠이 지난 후였다. 쏘카에서 전화가 왔는데, 계약자 본인이 차를 받아서 수령한 뒤 검수를 하고 인수증에 사인을 해야 한단다. 인수 시간은 오전과 오후 중 고를 수 있는데 정오 12시와 오후 4시 정도로 나뉜다. 점심을 먹은 뒤 탁송 기사 분을 만났다. "예전의 나라면 차가 출고될 때 공장에 내려가 직접 받아오곤 했는데..." 열정이 충만했던 예전 기억도 잠시, 이제는 편한 게 좋아진 게으름이 날 지배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하며 헛웃음만 슬슬 나온다.

앞으로 우리가 1년 동안 공유할 현대 아반떼가 탁송되어 눈 앞에 나타났다. 김훈기 기자
앞으로 우리가 1년 동안 공유할 현대 아반떼가 탁송되어 눈 앞에 나타났다. 김훈기 기자

경기도 성남에서 출발한 탁송 기사 분은 "최근 출고되어 탁송하는 자동차 대부분이 카셰어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만 해도 3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 계약차 운송을 맡은 특정 업체 소속임을 감안하더라도 카셰어링이 최근 자동차 소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동차를 검수하고 인수증에 사인을 받고는 바로 출발한다는 기사 분을 붙잡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그는 대중교통이라고는 기차역이 전부인 민통선 부근의 마을에 다녀왔던 지난 경험을 들려주며 탁송 기사의 직업적 애환과 즐거운 보람을 토로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잠시 싹튼다.

카셰어링은 주유소 기계 세차를 권장한다.
카셰어링은 주유소 기계 세차를 권장한다.

평소 카셰어링을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세차나 정비는 어떻게 해결하나 궁금했는데 인수증에 서명을 할 때야 의문이 풀렸다. 무료 세차가 가능한 카드를 받은 것. 한 달에 8회 외부세차를 할 수 있는 SK직영주유소 자동세차 카드다. 눈이나 비가 내리거나 먼지가 쌓일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 "가만있자 SK 직영 주유소가 어디 있더라?" 아, 카셰어링 운용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상 점검 외에 본격적인 정비는 일정 시기에 맞춰 쏘카에서 순회에 나선다고.

아반떼는 옵션이 거의 없는 기본형 모델이지만 쏘카에서 부착한 내비게이션과 와이파이 시스템이 달려 있다. 김훈기 기자
아반떼는 옵션이 거의 없는 기본형 모델이지만 쏘카에서 부착한 내비게이션과 와이파이 시스템이 달려 있다. 김훈기 기자

탁송 기사를 배웅하고 드디어 실내에 앉아본다. 우려했던 전자식 스티어링 휠의 감각부터 체크해본다. 수년 전 쏘나타(YF)를 구매했을 때 스티어링 휠 조작에 심각한 문제, 즉 급조작에 따른 스티어링 기능의 멈춤 현상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주행 용도로 쓰는 차인데다 수년이 지나 분명 개선했을 테니 그럴 일은 없으리라 예상한다. 스티어링 감각만큼은 앞으로 운용할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체크할 항목이다.

새차의 비닐을 떼어내는 맛이 그렇게 좋다던데. 김훈기 기자
새차의 비닐을 떼어내는 맛이 그렇게 좋다던데. 김훈기 기자

안팎으로 신차임을 내세우는 자랑스러운 흔적이 곳곳에 붙어 있다. 내외장재 보호용 비닐 얘기다. 차체 조립 라인에서의 불미스러운 접촉을 막기 위해 문 끝에 붙인 파란색 스펀지부터, 운전대를 포함한 실내 곳곳에 비닐이 붙어 있다. 혹자는 비닐 떼어내는 맛에 신차를 탄다고 하던데 난 그저 귀찮기만 하다. "현대차에 비닐 납품하는 회사는 정말 좋겠네. 떼돈 벌지 않을까?" 쳇, 이런 속물 같으니라고. 스스로에게 건넨 혼잣말이다.

아반떼는 잘 생겼다. 과도한 디테일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지만. 김훈기 기자
아반떼는 잘 생겼다. 과도한 디테일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지만. 김훈기 기자

아반떼는 잘 생겼다. 도로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김춘수 시인이 그랬듯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대상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하지 않더냐! 거리에 널린 아반떼가 나와 인연이 되니 그리 예뻐 보이다니! 다들 그런 기분일 것 같다. 내차만 되면 누가 별로라고 하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신형 i30부터는 헥사고날 그릴 디자인이 새롭게 거듭났지만 아반떼는 아직 그대로다. 부메랑을 닮은 안개등은 과도하게 멋 부린 모양새다. 윗급 모델에서는 발광다이오드 주간주행등이 들어가는 위치지만 기본형 트림인 우리 차에는 동그란 안개등이 하나 조촐하게 박혀 있다. 정작 아쉬운 건 주광색 할로겐 헤드램프다. "대체 요즘 세상에 그게 뭐람!" 혀를 끌끌 차더라도 옵션 선택의 여지는 없다. 사실 가장 큰 불만이 그거다. 난 카셰어링으로 아반떼 스포츠나 시트로엥 칵투스를 고르고 싶었으니까.

차를 받으면 파란색 스폰지는 떼어내자. 타인의 차를 보호하고 싶다면 애프터마켓 몰딩을 권한다.
차를 받으면 파란색 스폰지는 떼어내자. 타인의 차를 보호하고 싶다면 애프터마켓 몰딩을 권한다.

문에 붙은 파란 스폰지를 떼어낸 뒤 끝부분을 투명 고무 몰딩으로 감싸고 싶다. 좁은 주차 공간에서 다른 차에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소 조심스레 문을 여닫는 편이지만 혹여 모를 실수를 대비하기에는 최적의 방식이니까.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 꼭 주의할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차 문을 열기 전에 고개를 돌려 앞뒤를 확인하는 버릇 하나, 문을 닫을 때 적절한 힘을 가해 부드러우면서도 완벽하게 체결되도록 닫는 노하우가 둘이다. 지면을 통해 꼭 권하고 싶다.

육안으로 금새 찾아낸 패널 조립 단차의 수준. 완벽한 내 차(?)였다면 인수 거부했을 것이다.
육안으로 금새 찾아낸 패널 조립 단차의 수준. 완벽한 내 차(?)였다면 인수 거부했을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파란 스폰지를 떼어내다가 이상한 부분을 찾아냈다. 좌우 뒷문과 보디의 단차가 다른 점(사진 참고). 처음에는 오른쪽 뒷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갭(추후 디지털 버니어 캘리퍼스로 수치를 측정한 뒤 도어 경첩을 만져 조절할 생각)이 너무나 크다.

조립 품질의 일관성은 기본이다. 라인을 설치한 초기도 아닌데 이러면 곤란하다.
조립 품질의 일관성은 기본이다. 라인을 설치한 초기도 아닌데 이러면 곤란하다.

하지만 이미 인수증에 서명을 한 뒤였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랄 만큼 무덤덤한 내 자신이 신기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유인즉 사실상 내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인 대량구매로 내보내는 차 중에서 종종 이런 경우를 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정확하게 1년 뒤면 우리 팀을 떠나갈 차니까. 게다가 이름 모를 사람들과 함께 쓰는 터라 관리의 대상일 뿐 깊은 애착은 형성되지 않을 듯한 조건이다. 카셰어링의 숨은 가치를 목도한 순간이다. "아, 공유란 게 바로 이런 거군. 허헛"

한국일보 모클팀 mocle@hankookilbo.com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