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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 ‘하드 브렉시트’선포… 더 크게 흔들리는 유럽

입력
2017.01.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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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7일 런던 랭카스터하우스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방침을 밝히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7일 런던 랭카스터하우스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방침을 밝히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61) 영국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 계획을 최초로 밝히는 17일(현지시간) 공개 연설에서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사실상 ‘하드(강경) 브렉시트’노선을 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드 브렉시트 선언은 유럽회의주의 확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반(反)EUㆍ친(親)러시아 발언으로 인해 흔들리는 유럽을 더욱 불안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날 런던 랭카스터하우스에서 각국 대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가진 연설에서 “영국은 EU와 새롭고 동등한 관계를 수립할 것”이라며 “독립된, 자치력이 있는, 국제적인 영국”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EU에는 부분 회원이든, 준회원이든 남지 않는다. ‘절반의 탈퇴’는 없을 것”이라며 하드 브렉시트 노선을 공식화했다. 또 “영국 정부의 독립된 법률과 정책 설정 권한을 회복해야 하기에 단일 시장에는 남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한동안 브렉시트의 한 방안으로 논의되던 ‘EU는 탈퇴하되, 노르웨이처럼 단일시장 내 지위를 유지’하는 이른바 ‘소프트(연성) 브렉시트’는 배제됐다.

메이 총리는 협상의 4대 원칙으로 ▦확실성 ▦강한 영국 ▦공정한 영국 ▦세계적인 영국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최종 협정안을 의회의 표결에 부칠 것 ▦스코틀랜드ㆍ웨일스ㆍ북아일랜드 지방정부의 의견을 반영할 것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한 이민 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 ▦유럽 내 단일시장 잔류를 포기하는 대신 전세계의 다양한 국가와 영국이 직접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에 대한 의회의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확실한 절차진행을 위해 의회의 승인을 받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메이 총리는 자유무역 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은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EU와의 신규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EU와의 무역협정이 영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무역협정을 포기할 수도 있다”며 강경한 노선을 유지했다. 그는 “영국 유권자들은 브렉시트에 뒤따르는 문제를 알면서도 (브렉시트를)선택했다. 그들은 때때로 불확실할 수 있는 길을 가기로 결심한 것”이라며 정치ㆍ경제적 후폭풍을 각오했다.

영국 언론들은 메이 총리의 연설을 초강경 브렉시트로 인식하고 있다. 일간 가디언은 이번 연설을 “메이 총리가 EU와의 협상에서 자유무역보다 이민 통제와 주권 회복을 우선시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동안은 메이 총리가 경제적인 불안과 브렉시트를 둘러싼 보수당 내분을 잠재우기 위해 EU와의 협상 과정에서 이민 통제권과 정책주권 회복 요구를 완화하고 소프트 브렉시트 노선을 밟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초강수를 둔 메이 총리를 향한 내부의 정치적 도전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유럽은 메이 내각이 ‘이민 통제’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내부 정리를 끝내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소프트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이 법인세 인하를 시사하면서 하드 브렉시트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

메이 총리가 의회와 지방정부의 의견을 묻기로 하면서 의회 내 잔류파와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잔류를 택한 스코틀랜드ㆍ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저항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 강성 잔류파인 팀 패런 자유민주당(LD) 대표와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제1장관 등은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간지 미러는 “메이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로 인한 단기적인 정치ㆍ경제적 충격을 감안하더라도 2020년 총선에서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계산한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적 여건도 하드 브렉시트에 유리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EU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5일 유럽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EU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당선인은 새로운 미-영 자유무역회담을 빠르게 체결할 수 있다면서 사실상 하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단 메이 총리는 “우리는 EU가 성공하길 원한다”며 반EU 노선에는 거리를 뒀고 “영국은 근본적으로 국제주의자”라며 자유무역체제 유지에도 힘쓸 것이라 밝혔다.

그럼에도 메이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 선언은 유럽회의주의의 확산에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단일시장 체제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인 영국이 EU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을 선언하면서 유로존의 정당성이 훼손됐다. 게다가 영국이 브렉시트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 EU의 온정적 이민정책은 빈발하는 테러로 인해 유럽 내에서도 비판에 직면해 있다. 3월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와 4~5월 대선이 진행되는 프랑스에서는 반유럽 성향 포퓰리즘 정당이 반이민 바람을 타고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다.

브렉시트발(發) EU의 위기는 국제질서에도 변화의 전조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문제를 놓고 미국과 연대해 러시아를 견제해 온 EU의 힘이 빠지면 동유럽과 중동에서 러시아의 세력확장이 가속화할 수 있다. EU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독일의 9월 총선에서마저 포퓰리즘 정당이 선전할 경우 ‘트럼프 미국’과 ‘푸틴 러시아’ 양측의 압력을 받게 된 EU가 급격히 분열할 가능성도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유럽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계획 발표를 하루 앞둔 16일 런던시내 물웅덩이에 엘리자베스 타워와 윈스턴 처칠 동상이 비치고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유럽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계획 발표를 하루 앞둔 16일 런던시내 물웅덩이에 엘리자베스 타워와 윈스턴 처칠 동상이 비치고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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