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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세계화 분노 이유 있지만, 보호주의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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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요 싱크탱크 중 하나인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대표를 맡고 있는 리처드 볼드윈 제네바대 국제경제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12월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술 발전으로 인해 불평등이 가속화돼 반세계화 운동이 발생한 것”이라면서도 “보호주의로 세계화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볼드윈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저서 ‘대집합(The Great Convergence)’에서 기술 발전으로 인한 ‘3차 세계화’가 다가오고 있다며 더 많은 서구 선진국 노동자들이 위기에 몰릴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각국 정부가 보호주의 대신 효과적인 교육과 복지 정책으로 세계화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에 대해서는 “브렉시트를 한다는 것만 결정됐을 뿐 ‘어떤 브렉시트’인지 합의된 바가 없다”며 영국 내외에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장기간의 진통을 예상했다.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대응
-영국인 반 이상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탈퇴를 선택했다. 원인이 무엇인가? 복잡한 답안이 예상되기에 추가로 질문하자면, 브렉시트의 핵심 원인은 반세계화 정서인가?
=그 질문에 단순한 답은 없다. 유럽연합 가입 이후 10~15년간의 변화로 인해 누적된 불만과 불안이 브렉시트를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는 세계화뿐 아니라 인구구조의 변화, 이민자에 대한 반감, 영국 지역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다.
반세계화 감정이 하나의 요인일 수는 있다고 본다. 주로 직업이 없는 이들, 나이든 세대, 직업 전선에서 은퇴한 이들 중 다수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대부분 세계화와 공장 자동화의 영향으로 직업을 잃은 이들이다. 브렉시트 투표자들은 사회변화에 익숙하지 못했고 밀려났기에 그 불만을 다른 영역에 투영하게 되는 것이다.
브렉시트 진영의 승리에는 반세계화 감정뿐 아니라 영국 보수당의 반유럽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보수당은 전통적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노선을 지지하지만, EU의 일원으로 보이는 것은 싫어했다. 이 때문에 영국의 EU 내 잔류를 지지한 테리사 메이 총리도 브렉시트 원칙론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만 놓고 봐도 반세계화가 브렉시트의 전부는 아니다.
-영국 내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의 자유이동 정책과 이민자 문제를 경제적인 원인과 연결시켰다. 예를 들면 복지제도의 실패, 중산층의 위기 같은 것이다. 이건 사실에 기반한 설명일까?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엄밀히 말해서 복지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브렉시트 진영이 강력하게 내세운 주장 중 하나가 복지실패의 원인을 늘어나는 유럽 이민자들에 돌린 것이다. 사실 경제 통계를 보면 이민자는 경제를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진실이 아니라 관점이다. 지난 10년간 많은 영국인들이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렸고, 복지제도는 이들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그 원인을 늘어나는 이민자에서 찾았다. 그러나 EU 탈퇴 지지자가 많은 곳은 이민자가 많은 런던 등 남부가 아니라 북중부 지역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타블로이드지 더 선이나 일간지 텔레그래프, 더 타임스 같은 영국의 대중 언론도 이런 측면을 부추겼다. 영국 대중 언론은 20년간 꾸준히 반EU 노선을 밀어붙여 왔다. 특히 잉글랜드 지역에서는 노동자 계급과 저소득층이 이들 언론을 읽으며 반EU 정서를 내면화했다고 본다. 타임스와 더 선을 쥐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의 기업주가 반EU 성향을 드러내 온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루퍼트 머독은 오랜 유럽회의주의자로, 브렉시트 투표를 ‘환상적인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대로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는 잔류를 지지했는데, 이들이 유럽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들이 잔류를 지지한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언론이다. 더 선이나 더 타임스 같은 언론은 잉글랜드와 달리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는 인기가 없다. 또 하나는 지역 문화의 특수성이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 역사적으로 유럽과 밀접하게 기대는 경향이 있었고, 유럽적 가치를 더 쉽게 수용했다.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의 성향이 잉글랜드 전반에 비해 더 진보적인 점도 한몫을 했다.
북아일랜드는 남쪽에 있는 아일랜드와 밀접하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 국경의 긴장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이 된다. 실제로 브렉시트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알 수 없지만, EU 탈퇴로 인해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일원인 북아일랜드 사이 국경 긴장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북아일랜드에선 잔류 표가 많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모두 잉글랜드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맥락이 있기에, 잉글랜드 중심부와는 다른 원심력이 작동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메이 내각의 브렉시트 준비와 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메이 총리는 집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당 내에 브렉시트를 둘러싼 입장차가 없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수당 내에는 탈퇴파와 잔류파, 탈퇴파 내에도 ‘하드 브렉시티어(과격 탈퇴파)’와 ‘소프트 브렉시티어(온건 탈퇴파)’의 입장이 갈려 있다.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의미한다”는 메이 총리의 발언은 이 분열상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돌이켜보면, 이 투표는 영국인들에게 ‘EU에서 탈퇴할 것이냐’를 물었지, ‘어떻게 탈퇴할 것이냐’를 묻지 않았다. 투표자들도 ‘EU 반대’ 투표를 한 것이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투표를 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EU에서 탈퇴한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자연히 탈퇴 전략을 수립하기도 어렵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투표를 ‘반이민 투표’라고 주장하면서 이민자 숫자를 줄이는데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것을 메이 내각의 방침으로 볼 수 있지 않나?
=그건 메이 총리가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이다. 메이 총리는 전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내각 하에서 내무장관이었고, EU 규정 때문에 국가간 자유이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브렉시트 논의에 얹은 것일 뿐이다. 메이 총리는 총선으로 집권하지 않았고 캐머런 전 총리의 사임 후 그 자리를 승계했다. 메이 총리의 정책노선이 선거 과정을 통해 검토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협상이 진행되면 영국이 어떤 정책과제에 더 집중해야 할지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의견도 엇갈릴 것이다.
-금융가와 언론에서는 브렉시트 과정이 완료되면 다국적기업과 금융가가 유럽 대륙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영국이란 시장 자체의 크기도 무시할 수 없다. 브렉시트로 인해 기업들이 이탈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영국 내 다국적기업이 모두 유럽 대륙으로 넘어갈 거라는 예측은 과장된 것이 사실이다. 지적했다시피 영국 자체 내 시장도 규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대륙 접근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근거가 있다. 영국을 유럽 전진기지로 삼고 있는 일부 해외기업들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 대륙의 투자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
-EU측 지도자와 협상가들이 역으로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고 있다. 영국이 단일시장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는 EU에도 상처가 되지 않을까?
=당연히 EU에 상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브렉시트로 인해 상처를 더 크게 입는 것은 영국이다. 우선 인구 규모부터 밀린다. 영국 인구가 6,500만명이고 나머지 EU국가를 다 합치면 2억7,000만명이다. 더구나 EU 단일시장이 출범한 이래 영국의 산업구조 자체가 EU와 깊이 연결돼 있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국가의 강점 산업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EU에 유리하다. 영국이 여전히 경쟁력을 지닌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유럽의 손상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EU 측에서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것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EU 회원국의 제도권 정당은 유럽회의주의 성향 좌ㆍ우파 정당에 영향력을 빼앗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브렉시트 후 자국에 유리한 새 협상을 체결하면 유럽회의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이란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 각국 제도권의 입장에서는 EU 탈퇴를 결정한 영국이 일정 부분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필요할 것이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면 브렉시트를 취소하거나 자유민주당(LD) 등 정치권에서 나오는 재투표 제안도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지금 당장은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 협상은 앞으로 수년이 걸릴 것이다. 2017년 3월에 탈퇴 협상을 개시하면 최종 탈퇴까지 최대 2년이 걸린다. 그 후 EU와 새로운 협상 체결을 위해 더 긴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 사이인 2020년 5월에 총선이 있다.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를 둘러싼 논쟁은 어떤 형태로든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결구도가 형성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화와 ‘대집합’에서 보는 미래
-최근 반세계화 여론이 서구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브렉시트도 그렇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도 결정적 장면이었다. 경제적 불평등이 이런 반세계화 열풍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불평등이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급격한 발달에 주목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부유한 서구 국가와 그 외 지역의 가난한 국가 사이에는 막대한 정보격차가 존재했다. ICT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런 정보격차가 사라졌다. 선진국에서는 탈산업화 현상이 나타났고 개발도상국은 기술을 활용해 급격한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탈산업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서구국가 내 노동자들이 나타났고, 이들이 세계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이 저서 ‘대집합’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세계화에 대한 통상적인 인식과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화는 가난한 국가와 민중을 가난한 상태로 유지하고 부유한 국가와 기업의 부를 축적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당신은 세계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국가간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것도 단언하기는 어렵다. 중국ㆍ한국ㆍ필리핀ㆍ인도 등 아시아 국가에서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줄어들고 있으며, 후발 발전국가가 더 빨리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저개발지역에는 그보다 더 많은 가난한 국가와 민중이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전세계적인 부가 증가했지만 여전히 부유한 소수의 국가만 부유한 상태다.
내가 ‘대집합’에서 주장하고자 한 바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 부의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동시에 부유한 국가 중산층의 처지가 상재적으로 나빠졌다는 것이다. 서구 국가 내에서만 보면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경제적 불균형 문제는 더 커졌다고 본다. 이것이 현재 유행하는 반세계화 담론의 원인이기도 하다. 세계화와 경제적 불평등 논의를 하려면 지역간 불평등, 국가간 불평등, 국가 내 경제적 불평등을 총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대집합’에서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며 아직 세계화의 세 번째 단계가 남았다고 주장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부탁한다.
=세계화의 첫 번째 단계는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고 두 번째 단계는 앞서 말한 기술과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마지막 단계는 노동력의 자유이동이다. 이는 단순히 이민자를 받아들여 저숙련 노동력을 대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텔레프레센스’와 ‘텔레로보틱스’라는 기술이 노동력 이동 비용을 급격히 떨어트릴 것이다. ‘텔레프레센스’란 대형 스크린과 다수의 카메라, 조명 등을 활용한 고도로 발전된 원격 회의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이들의 공동 지식노동이 가능하다. ‘텔레로보틱스’는 더 나아가 노동자가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 물건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미 잘 알려진 원격 의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필리핀에 있는 노동자가 로봇을 운전해 서울에 있는 호텔을 청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업은 더 많은 저임금 노동력을 해외로 아웃소싱할 것이고, 노동비용은 더 떨어질 것이다.
-당신은 세계화 흐름을 돌이키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좌ㆍ우파 모두 강력한 반세계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의 움직임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인가?
=미국과 영국에서 반세계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창하는 보호주의라고 하면 결국 관세를 매겨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트리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보호하겠다’ 즉 해외로 나간 공장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무역을 규제한다고 해서 기술과 지식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세계화를 향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정당하지만 반세계화 진영의 해법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가에서 반세계화 운동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일본은 선진국이지만 반세계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또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후발 산업국가는 여전히 세계화를 옹호하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세계화의 혜택을 어떻게 발전하지 못한 국가와 경쟁에서 밀린 저임금 노동자들에게까지 확산하느냐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보호주의가 해법이 아니라면, 각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결국 효과적인 교육과 복지정책이 따라와야 한다. 불가역적인 이유로 시장에서 밀려난 노동자가 유효한 일자리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재훈련 프로그램을 정부 차원에서 활성화해야 한다. 설령 저숙련 노동자들이라도 ‘텔레프레센스’나 ‘텔레로보틱스’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담당할 수 있다. 또 실업 상태에서도 노동자가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거와 기본적인 복지 지원이 필요하다.
런던=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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