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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 칼럼] 조기 대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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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밖에서 보고 있노라면 문제나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경우 근본적 치유나 처방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처리과정이다. 수 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은 너무나 형식적이고 졸속적이었다. 해경을 해체하고 새로운 부처를 설치했지만 그 이후 안전에 대한 대처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도 사태 수습이라는 것이 사고를 서둘러 덮으려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서두르는 병은 아마도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산업화 시대를 시작으로 한국사회는 “빨리 빨리”라는 심각한 병증을 얻게 되었다. 속도전이 가져온 수 많은 사고를 겪고 나서도 민주화라는 변화 이후에도 이 증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
현재 예상되는 조기 대선도 이런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법적 절차로 보아 탄핵 이후 곧 대선을 치르게 되어 있어 탄핵정국에 대한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대선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탄핵 정국에 대한 반성과 정리 없이 허둥지둥 선거를 치룰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정치권 움직임을 보면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도전에 대한 심사숙고 보다 개헌을 매개로 한 이합집산에 더 관심을 나타내고 있고 국민의 눈길을 끌려는 단발성 개혁안이 제안되고 있다.
정치권의 이런 권력 집착적 행위는 촛불 시위가 보여준 민심을 거스르는 것인 동시에 한국사회가 당면한 전반적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 마련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촛불 민심은 단순히 대통령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동안 민생 문제 등 한국사회가 위기 상황인 데도 정쟁만 일삼았던 정치권 전체에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였다. 민주주의란 이름 하에 선거만 이용하여 자기들의 자리만 차지한 후 국민과 소외된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만이었다.
조기대선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정치, 경제, 대외 관계에서 중첩된 위기 상황에 대한 심각한 토론과 합의 도출을 하지 못한 채 새로운 권력 집단만을 창출하는 기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패권에 기초한 한국정치는 국민을 이용만 하면서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경제는 외환위기 이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지 못하고 하강 곡선을 그려왔고 사회적으로는 합의된 사회 규범이 없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더욱이 국제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 관료, 시민사회 어디에도 중심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당은 정상적인 정책기능을 상실한지 오래고 관료는 그 조직의 일관성이 파괴된 체 정치화 되었으면 시민사회는 저항에는 강하지만 현실적 대한 제시 등 적응에는 약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기구도 한국사회의 도전과 문제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누적적으로 관찰하고 문제를 총체적으로 제기하는 그룹이나 조직이 결여된 상태로 한마디로 표류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은 탄핵에 관계없이 한국이 당면한 위기 상황 하에서 치루어 지게 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의 심각성에 비추어 탄핵 이후 조기대선은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위기 해법에 관한 사회전체의 근본적 합의와 토론을 결여한 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조기 대선의 함정이 있다. 대선은 새로운 권력 집단을 창출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집단은 십중 팔구 준비되지 않은 채 권력을 잡게 될 것이다. 이는 항상 어지럽고 숨가쁜 상황에서 빨리 빨리 현상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탄핵 정국이 야기한 급박한 정치 상황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 이를 전제로 어떻게 한국사회가 대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때다. 조기 대선을 한국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을 위한 합의 창출 과정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인과 정치계의 대오 각성이 어느 때보다 심각히 요청되는 이유다. 이번에야 말로 권력욕에서 벗어나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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