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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고립주의 실패? 그럼 폭동 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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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 현장을 가다] 미국 러스트벨트의 반세계화 정서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거세게 몰아쳤던 세계화 물결의 퇴조 현상이 뚜렷하다. 세계 각국 간의 무역과 금융시장 통합 흐름은 유럽 각지로 몰려드는 난민들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ㆍEU 탈퇴)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도 반세계화 조류의 결과였다. 유럽 각국은 통행과 통상에 빗장을 걸고 나섰으며 트럼프 행정부 또한 고립주의를 천명했다. 이 지점에서 ‘지구촌은 과연 높은 장벽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반세계화 조류의 실체와 세계질서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세계 각지의 반세계화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 12월6일. 미국 위스콘신 주 커노사. 미국 자동차 공장의 요람이던 도시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한국이 구한말(舊韓末) 혼란에 허덕이던 1902년 이미 자동차 공장이 들어섰던 시내 33번가 5555번지 107에이커(43 ㏊ㆍ13만평) 대지는 폐허였다. 2010년 크라이슬러 엔진 공장이 문을 닫으며 철거된 건물의 콘크리트 잔해가 방치되어 있었다.
2006년 전성기 1,600명이 노동자가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100년 넘게 형성됐던 주변 상권과 주택도 쑥대밭이 됐다. 대낮인데도 인적 끊긴 주택가는 슬럼가를 방불케 했고, 노동자들이 퇴근 후 찾던 주점 대부분은 폐업 간판을 내민 상태였다.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한 주점에서 일한다는 제이미 사비나는 “공장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가지 곳곳에 나붙은 해고자 상담 광고는 사비나의 꿈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반 엘리트주의’와 결합한 반세계화
미국인은 스스로 ‘이민자의 나라’,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자처한다. 누구를 만나도 겉으로는 세계화ㆍ개방화에 긍정적인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한 걸음 다가서 들여다 본 그들의 내면에는 ‘반 엘리트주의’와 결합된 ‘반 세계화’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깜짝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백인 계층에서는 학력ㆍ연령ㆍ직업, 심지어 성별 구분없이 ‘반 자유무역’, ‘반 이민’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시간 주 매컴 카운티의 ‘LA 코니 아일랜드’음식점에서 만난 찰스 올리비어는 반 세계화 정서가 투철한 전형적인 백인 근로자였다. 인근 포드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미국의 좋은 일자리를 외국으로 빼돌리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를 찍었지만, 이번에 트럼프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오바마가 51.4%를 얻었던 매컴 카운티를 4년 뒤 트럼프(53.6%)가 석권한 배경에는 올리비어 같은 ‘반 세계화’ 백인 근로자들의 변심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올리비어는 “내 임금은 10년째 시간당 35달러 그대로다. 2000년 이후 입사한 후배들은 시급이 25달러에 불과하다”고 불평했다. 실제로 매컴 카운티가 속한 디트로이트 지역에는 서비스 분야의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겼지만, 대부분 자동차 분야 중소ㆍ하청업체(시간당 15달러)보다 임금 수준이 낮다. 올리비어의 공장 동료인 브라이언 페너베커도 “포드, GM 등 좋은 직장이 떠난 자리에 임금이 낮은 나쁜 일자리만 생겼다”며 “자녀 세대가 나보다 못살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세계화를 부추기는 불법 이민자
러스트 벨트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계층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고학력ㆍ백인계층에서도 반 세계화 정서가 확연했다. 다만 근로계층과 달리 이들의 ‘반 세계화’는 ‘반 이민’과 불법 이민자에 대한 우려였다.
디트로이트에서 활동 중인 여성 경영 컨설턴트 바바라 하렐은 “당초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를 지지했으나 그가 낙마한 뒤 곧바로 트럼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 공동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게 겁이 난다. 트럼프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냐고 되묻자 “그렇다. 그러나 인품과 경력이 검증되지 않은 불법 이민자는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미시건 주 매컴 카운티에서 만난 올리비어와 페너베커는 난국을 타개하려면 철저한 반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외국으로의 미국 공장 이전 금지 ▦중국ㆍ일본ㆍ한국 등과의 교역중단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공정무역’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내용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통상압력을 행사하는 ‘보호무역’이었다. 페너베커는 “무역에서 미국이 얻는 것보다 중국, 일본, 한국 등이 챙겨가는 게 더 많다”며 “교역을 중단하면 그들 손해가 더 클 테니 미국은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기성 정치와 기득권층을 향한 혐오
일자리를 지켜내고 불법 이민자를 쫓아내겠다는 트럼프 주장에 환호하는 이들 대부분은 미국 사회 지배계층에 대해 불신과 적개심도 함께 드러냈다. 미국 서민들이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지목한 대상에는 워싱턴의 정치인은 물론이고 노동조합 간부, 주류 언론 등이 망라됐다.
미국 정계의 거물인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도 지역구(위스콘신 1선거구)에서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많은 커노사 주민들이 “라이언 의장이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동안 고향 경제는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라이언 의장의 입김으로 시 외곽에 유통단지가 들어섰지만, 일자리 규모와 수준이 당초 약속과 다르다는 것이다. 짐 크래키는 “고향을 외면한 라이언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커노사 인근 카르타고 대학 경영학과의 마크 밀러 부교수는 “구 도심 경제는 파산 직전”이라고 말했다.
디트로이트 시내 외국인 투자관련 사무소에서 일하는 데이빗 코첼도 “부도덕한 클린턴을 위해 담합했던 주류 언론을 믿지 않는다. 트럼프의 트위터와 위키리크스 폭로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했다. 포드 공장의 패너베커 역시 “전미자동차노조(UAW)가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부패한 노조 집행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간부들은 오바마 정권과 결탁해 큰 돈을 주고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상위 1%만 이득을 본 세계화 흐름을 끊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러스트 벨트에는 ‘세계화만 하면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지배층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통상과 통행의 장벽을 높이 세우고 고립주의로 질주했을 경우의 후폭풍은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만난 코첼은 심지어 ‘트럼프가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럼 폭동이라도 일으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 기득권주의와 반세계화에 편승한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국수주의로 폭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커노사(위스콘신)ㆍ디트로이트(미시간)=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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