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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 헌법 논란… 현실정치와 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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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문화계 결산<4> 학술
올해 학술계엔 첨예한 논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첨예한 만큼이나 아주 새롭다던가, 아주 뛰어났다던가 하는 건 의문이다. “옛 것은 사라지려 하나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이다.
가장 첨예한 논쟁은 역시 ‘고대사 논쟁’이었다. 흔히 쓰는 표현대로 ‘강단 사학계에 대한 재야 사학계의 비판과 파상공세’는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평소 재야 사학 쪽에 눈길도 주지 않던 강단사학계에 정색하고 반박하면서 논쟁이 커졌다.
30년 만에 재연된 고대사 논쟁
계기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추진하던 미국 하버드대 한국고대사연구사업,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한사군 문제 때문에 잇달아 좌초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사업의 진짜 좌초원인을 두고 여러 얘기가 있으나 낙랑군 위치 문제 때문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올해 초엔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를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한 식민사학자’라 비판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 대해 1심 법원이 유죄 판결까지 내놨다. 또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면서 고대사 분야에 대대적으로 손댈 것이라는 우려까지 널리 퍼졌다.
이런 여건 아래서 지난 3월 발간된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는 젊은 소장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재야 사학의 주장을 비판하는 특집을 싣고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역사비평 특집은 ‘재야 사학’ 대신 ‘사이비 역사학’, ‘유사 역사학’이란 용어를 쓰면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학계 일부 인사들은 ‘학’을 떼고 그냥 ‘사이비역사’ ‘유사역사’라고까지 부른다. 엄정한 사실관계와 찬반 논쟁을 나 몰라라 한 채 그냥 믿고 싶을 대로 믿을 뿐인 얘기를 ‘학문’이라 부를 수 없다는 입장 때문이다. 학계의 중견 학자들이 모인 한국고대사학회도 3월부터 ‘2016 한국고대사 시민강좌’를 열어서 사이비, 유사 역사학을 비판하고 나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계절별로 강단사학과 재야사학간 토론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학계 전반의 공식적이고 대대적인 반격은 1988년 반년간지 ‘한국사시민강좌’의 특집 이후 30년만의 일이었다. 학계 관계자는 “현실이 힘들어지면 위대한 상고사에 대한 욕구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한탄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덕일 소장이 지난달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서다. 법원이 학문의 자유, 공공의 이익을 내세웠으니 더욱 그렇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재야 사학을 대화 파트너로 격상시켜주고, 법원이 학문의 자유까지 달아줬으니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는 탄식도 나온다. 어쩌면 위대한 상고사에 대한 꿈, 그리고 그 꿈을 추동하는 우리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와 현실 정치의 암울함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반복될 주제다.
되살아나는 뉴라이트 건국절 논란
학계를 달군 또 하나의 주제는 ‘건국절’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보다는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건국기념일로 삼아 더 크게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논란은 이미 오래됐다. 광복 자체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에 따른 것이었으니 그보다는 오늘날 남한의 자유와 번영을 낳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시작했다. 이에 대해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하고 북한까지 포괄한 헌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고,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투쟁을 벌였던 선열들의 노력까지 무시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됐다. ‘조선 –대한제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법통을 무시하는 역사 허무주의일 뿐 아니라 결국 일제 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가해졌다.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은 1919년이라 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건국절이란 이름을 썼다’는 식의 공방도 오갔으나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이 논쟁이 예민해진 것 역시 국정 역사교과서 때문이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이라 표기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까지 가지 않은 것은 그나마 양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건국절의 기초작업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일었다.
‘제왕적 대통령제’ 이후의 헌법을 생각하자
고대사와 건국절 못지 않게 폭발력이 잠재하고 있는 사안은 개헌론이다. 군부독재 이후 선거에 따른 정권교체가 정착하면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여러 단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가 대안이라는 주장과 그래도 강력한 개혁적 지도자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다는 반론 또한 계속 있었다.
이 상황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지난 8월 ‘2016 새헌법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2006년 이후 11년 동안 수많은 법학자, 정치학자,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 500여명이 참가해 논의를 벌인 끝에 최종결과로 내놓은 것이다. 이 안은 ▦대통령 6년 단임제 ▦내각 수장으로서 총리 권한 강화 ▦국회 양원제 도입 ▦ 감사원 독립 ▦하원이 국가인권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을 담았다. 특히 대화문화아카데미의 개헌안은 대통령제냐, 의회제냐 하는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안 대신 국민의 기본권과 참정권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올 하반기 정국을 뒤덮어버린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안일 수도 있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2016 문화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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