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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 칼럼] 대통령만 탄핵하면 만사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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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드는 허탈한 생각은 어떻게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오랫동안 국민에게만 베일에 가려져 터질 때까지 지속될 수 있었나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사심과 사욕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의 발언이나 조기 대선에 눈이 어두워 대통령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즉각 하야를 외치는 야당들의 행동이다. 여야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양측 모두 국민은 안중에 없고 대통령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편은 대통령을 끼고 있어야 살고 다른 쪽은 대통령을 버려야 자기 세상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대통령의 하야가 한국 정치 문제의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인가.
박 대통령 자신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당 중진이 언급했듯 최순실의 존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를 알면서도 오래 방치한 이면에 한국의 오랜 고질병인 지역 패권주의와 이에 기초한 뿌리 깊은 대통령 맹종주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의 지역 기반과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를 업고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비판하기 어렵다. 국가ㆍ국민에 대한 봉사와 대통령에 대한 맹종을 구분하기도 어렵게 된다. 심지어 평생 해온 학문적 입장을 어겨가면서까지 대통령을 옹호하기에 이른다. 국회의원으로서 독자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장래를 위해 기본적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같은 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미국 정치인들과 크게 대조되는 대목이다.
이들이 국회에 모여 패권을 형성하게 되면, 마치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재벌 총수처럼 국회 운영에 왜곡이 생긴다. 패권 그룹과 멀어진 같은 당의 개별 국회의원들은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지역 패권주의 그룹과 영합해야 한다. 이러한 패권적 행위는 야당을 사납게 하고 무조건적 반대로 몰아가게 한다. 이렇게 대통령을 싸고 도는 그룹의 그림자 밑에 청와대에서는 독버섯이 자라왔다. 이런 현상이 비록 이번 사태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관된 이데올로기와 정책에 기반한 정당을 기대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국가적 어젠다 설정은 더욱 어렵게 된다. 지역 패권에 기반한 여당은 정상적인 야당을 어렵게 한다. 선거는 그룹과 지역 이익을 보호하는 정당성 확보의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것이 국회는 물론 한국정치 전반이 일반 국민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지역 패권주의에 마침내 철퇴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남 지역의 박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분노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지속되는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경남 지역의 한 상인이 특정 정당의 깃발만 보고 투표했던 것에 대해 절규 섞인 반성을 하는 모습이었다. 정치계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민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의 기반의 붕괴가 곧바로 정치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서 한국정치에 심각한 정치공백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정권 탈취에 눈이 어두워 심각한 반성 없이 구태를 재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시 새로운 거리의 정치를 불러 오는 한국정치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대선을 위한 대선을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제 한국정치인 각자는 우선 양심에 손을 언고 과거의 행동에 대한 고백과 반성을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판을 짜야 한다. 지역이나 자질구레한 연줄을 넘어 생각을 공유하는 그룹들 간의 정치적 재편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 산적한 복수의 위기 해결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탄 최순실 게이트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한국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밝은 미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이 제공해 준 새로운 기회에 정치권이 화답해야 할 때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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