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번역 師弟 경쟁…이상섭 교수 첫 완역

입력
2016.12.0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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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작업 끝에 '셰익스피어 전집'을 내놓은 이상섭 교수. 문학과지성사 제공
10년 작업 끝에 '셰익스피어 전집'을 내놓은 이상섭 교수. 문학과지성사 제공

“셰익스피어는 시인입니다. 같은 희곡이지만 조지 버나드 쇼가 산문체로 썼다면, 셰익스피어는 기가 막힌 운율을 넣어 썼기 때문입니다. 기존 번역본은 너무 장황한 산문체라 셰익스피어의 시적 운율을 살린 번역본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이상섭(79) 연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는 6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10년 작업 끝에 내놓은 ‘셰익스피어 전집’(문학과지성사)을 이렇게 설명했다. 9살 때 형 덕에 읽어본 ‘베니스의 상인’에 매료된 뒤 대학원 시절 전작을 다 독파하고 논문까지 셰익스피어 시대 평론가들을 주제로 쓴, ‘셰익스피어 마니아’로 살아온 지 70년만의 일이다.

“내 손으로, 전작을 다 번역해내서 너무나 기쁘다”고도 했다. 번다한 일이 많아 재직 중엔 엄두를 내지 못하다 정년 퇴임 뒤 10년간 매달렸다. 전집에는 희곡 38편, 시 154편이 전부 다 포함됐다. 보통 책 2배 크기인 국배판에 1,808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부인이자 역시 영문학자인 김정매(76) 동국대 명예교수는 “그 10년간 완전히 신나서 틈만 나면 책상에 앉아 한 줄 한 줄 꼼꼼히 번역작업을 했다”면서 “번역 못지 않게 운율과 리듬감을 살릴 수 있는 우리 말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택한 방식은 우리말의 4ㆍ4조와 그 변형인 7ㆍ5조의 활용이다. 이 교수는 “해외 무대에서는 실력 있는 배우가 대사를 할 때면 운율에 따라 자연스럽게 리듬이 실리면서 의미와 소리가 어우러지는데, 우리 번역은 그 점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번역 어쩌고 하다 구어체 느낌을 죽여버리니, 셰익스피어 작품이라면 배우들의 일장 연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가령 ‘햄릿’의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that is the question’의 경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번역이 유명하고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번역도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이를 ‘존재냐, 비존재냐, 그것이 문제로다’라 번역했다. 심각한 철학도였던 햄릿이란 캐릭터를 살리면서도 4ㆍ4조 리듬을 유지했다. 운율을 살리다 보니 원문의 행수에 맞춰 어떻게 번역됐는지 다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번 번역본은 묘하게도 사제지간 대결이 됐다. 이 교수의 제자 최종철 연세대 교수도 민음사에서 2019년 완간을 목표로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햄릿’ ‘맥베스’ 등 일부 작품들은 이미 선보였다. 최 교수 역시 시적 운율을 되살리는데 초점을 둔다. 이 교수는 “최 교수가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면서 “누구라 할 것 없이 좋은 번역을 내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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