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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해외 한국인에 기업 제품 뿌리는 '맹탕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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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두 명 가운데 박영수 변호사를 ‘박근혜 게이트’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12월 2일 박영수 특별검사는 언론과 만나 자신의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검찰의 수사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원점에서 시작”하겠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기금의 본질”을 거론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한식세계화야말로 그 동안 원점과 본질을 돌아본 적 없는 사업이었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을 “부적절한 국가 보조 사업”으로 못박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틈을 보았다. 재단법인 미르 사업, 에콜 페랑디 한식 과정 설립 시도, 한식문화관 개관 등 고비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다. 오늘도 사업은 흘러가고 있고, 최순실과 차은택 관련 의혹은 여기에도 짙다.
문제는 그동안 한식 세계화의 의의와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원점이자 본질인 “한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없었다. 그저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 및 식사”라고 말하는 수준에서 한식을 말하면 그만일까. 오늘날 조상의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담은 식생활은 없다. 지면에서 다 못할 논의는 다음을 기약하자. 너무 뻔해서 맥이 풀리는 이야기는 조금 미루자. 그보다 먼저 근거 없는 자부심도 볼썽사나운 열등감도 없이, 오로지 좋아서 한식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한국 밖에서, 조금 다른 각도의 한식당을 하는 벨기에 요리사 애진의 경우다.
“처음부터 삼겹살이 될 줄 알았어”
애진은 출생지가 한국일 뿐인 벨기에 헨트(Gent) 사람이다. 입양으로 벨기에 사람이 된 애진은 크면서 점점 한국 음식이 궁금해졌고 몇 년 전, 한국을 들러 한국 음식을 제대로 접하게 되었다.
“모든 게 조각 맞추기 같아요. 마침 딸도 다 커서 혼자 여행 다니고 내 일을 찾고 싶은데, 벨기에서는 건강한 음식, 자연스러운 음식, 혼자 말고 같이 해서 나누어 먹는 거, 그런 데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어요. 한식을 많이 먹어보지는 못했어도, 한식이 벨기에에서 유행하고 맞을 줄 알았지요. 바로 한국으로 갔어요.”
한국에 온 애진은 한국 서민이 먹는 음식을 접하는 한편 서울과 지리산을 오가며 한국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애진에게 장(醬)을 가르친 지리산 맛있는부엌 고은정 대표는 애진이 “한국 장맛하고 기코만(일본 간장 상표) 장맛하고 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고 기억한다. 이 까다로운 요리사는 한국식 삼겹살을 벨기에에 들여가 속된 말로 ‘대박’을 냈다. 김치도, 된장도, 쌈 싸 먹기도, 심지어 주황색 원통 식탁과 불판도 그대로 들여갔다. 하다하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합성수지 빨강 의자를 부쳐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한국에서 하던 그대로 잘될 줄 확신했어요. 벨기에 사람들이 바비큐를 워낙 좋아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동그란 식탁에서 고기 굽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전에 못 보던 새로운 모습이고, 유럽에서 오직 나만 차릴 수 있고요.”
그러면 벨기에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맛으로 먹는 거야, 재미로 먹는 거야? 여기서 다시 애진의 말문이 터졌다. “원래 유럽 사람들은 바비큐를 구워서 혼자 한 접시 놓고 먹어요. 그런데 같이 둘러 앉아 먹기도 재밌더라고요. 게다가 새롭지.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벨기에 사람들에게 한국 삼겹살 구이는 익숙한 방식인데, 익숙하되 새롭고 재밌고 맛있다는 거, 제가 주목한 게 그거예요. 나는 잘될 줄 알았어요. 처음부터 확신했어요.”
한국음식의 철학… 소박 건강 나눔
복잡한 설명 필요 없이 공감대를, 접점을 파고든 것이다. 재미와 맛은 어느 쪽이 앞선다기보다 서로 손을 잡고 있다. “내 음식이 성공적이라 해도,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하는 90%의 손님은 첫 경험이에요. 나머지 10%가 입양이든 친구든 여행 때문이든 한국과 인연 있는 사람, 그리고 호기심 많은 미식가? 그런데 내 음식이 진짜 한국식이어서 다시 와요. 새 음식을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한테 진짜 한국식으로 내놓는 거예요.”
더 묻기도 전에 애진이 설명을 보탰다. “나는 한국 음식의 본질적인 철학을 전달하려고 해요. 소박하고 복잡하지 않으며 건강함이 있다는 느낌, 여럿이 함께 먹는 느낌, 사회적인 행동이 있는 식탁, 이런 것으로 한식을 설명해요.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을 따르는 음식이라는 거지요.”
애진은 자신의 한식 사업을 한마디로 말해 ‘내가 이해한 본질적인 한식 철학’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때 지나치게 복잡하게 조리하거나, 어떻게 조리했는지 알 수 없게 뒤섞는 음식, 풍미가 뻔한 슈퍼마켓 조미료 음식은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고 한다. 간소하고, 자연스럽고, 자연을 존중하는 음식, “웨스턴 라이프”와는 다른 한식을 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한국의 자연으로부터 온 음식 또는 한국 자연으로 다가가려는 음식이 한식이에요. 이게 본질이라고 봐요. 내 생각엔 그래요. 한국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좀더 자연으로 다가가려는 음식을 해야 해요. ‘웨스턴 라이프’만으로 살면 공장 음식을 극복할 수 없거든요. 섭취하는 방식도 한식이 훨씬 자연에 가까워요.”
이쯤에서 ‘한식 세계화’란 말을 들어 봤는지 물었다. 애진의 대답은 간단했다. 알고 있고, 행사에도 가 보았단다. ‘정부 광고를 집행하는 센터’를 접한 적 있단다. “한국이 부자인 줄은 알겠는데 이런 프로모션이 특정 제품 홍보에 그친다면 무슨 효과가 있나요? 더구나 행사장에 나 같은 사람은 드물고 유럽에 와 있는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던데요? 한식을 정말 알리고 싶다면, 기업 제품을 뿌릴 게 아니라 철학을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해야지요.”
하우 투 쿡(How to Cook) 스토리텔링 하라
쓴소리를 더 들어보자.
“한국 정부는 왜 유럽에 나와서 한국인을 상대로 프로모션을 하는지 반성해야 해요. 돈 씀씀이만 가지고는 안 돼요. 창의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해요. 꾸준히 음식점을 열 현지 요리사와 협업하고, 한식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는지 유럽 사람에게 가르칠 때 진짜 ‘한식세계화’가 시작된다고 봐요. 거기서 장(醬)은 본질적인 요소예요. 슈퍼마켓 제품 뿌리기는 효과 없어요. 본질을 아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거예요. 기업 브랜드 소개가 아니라 음식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려주고, 음식을 통해 ‘정신’을 경험하도록 해야지요. 핵심은 ‘하우 투 쿡’이에요.”
애진은 몇 년 사이에 ‘하우 투 쿡’을 실제로 몸에 새겼다. 특정 한식만 좋아하지 않아서 매끼니 떠오르는 한식을 바로 해 먹는다고 한다. 한국 미역, 김, 생선, 김치, 간장, 고추장, 된장은 풍부한 영감을 주고, 다양한 요리 활동으로 자신을 이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벨기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요. 한식에 행복해지는 방법, 진짜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 있다고.”
경청해야 할 데가 분명 있다. 프로모션은 철저히 현지인을 향할 것, 한식의 본질을 생각할 것, 한국 음식의 본질은 한국 자연에서 왔음을 염두에 둘 것, 단순 제품 광고가 아니라 “하우 투 쿡”으로 현지인을 만나고 철학으로 매력으로 뽐낼 것 등.
애진의 말을 놓고 한국 현실을 지나치게 낭만화한다고 흠 잡기란 어렵지 않다. 아무튼 벨기에 사람 아닌가!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애진의 생각과 행동이 낭비에 그친 한식 세계화를 훨씬 뛰어넘은 데 자리하고 있음은 쉬이 알 수 있다. 한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비상한 시사점을 던진다. 내겐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인터뷰에 도움 주신 고영주 카카오봄 대표께 감사드린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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