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카드 받았다가… 논의 겉돌 땐 ‘공수표’ 우려

입력
2016.11.30 04:40

퇴진 시점 등 합의 쉽지 않을 듯

촛불민심과 갈등 빚을 가능성도

朴 ‘임기단축 개헌’ 시사했지만

現대통령에 적용 땐 위헌 소지

최순실 사태로 퇴진 압력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퇴진 결정을 국회의 몫으로 돌렸다. 사진은 28일 불이 꺼져 있는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 모습. 고영권 기자
최순실 사태로 퇴진 압력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퇴진 결정을 국회의 몫으로 돌렸다. 사진은 28일 불이 꺼져 있는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 모습. 고영권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자신의 퇴진 일정을 국회가 여야 합의로 결정해달라 요구하자 정치권은 즉각 그 시간과 방법을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야의 입장이 서로 다르고, 민주적 정권 이양, 국정 공백 최소화, 적용 가능한 법 절차 등을 복합적으로 따지는 고차방정식의 ‘퇴각 시간표’를 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정치적 해법이냐, 사법적 해법이냐를 우선 결정해야 하고, 현재로선 질서 있는 퇴진, 탄핵, 임기단축 개헌의 세 가지로 선택지가 좁혀지고 있다고 말한다.

29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정부청사 민원실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과천=홍인기 기자
29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정부청사 민원실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과천=홍인기 기자

정치로 풀어야 할 '질서 있는 퇴진'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중진들이 28일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명예로운 퇴진’은 그간 정치권에서 거론돼온 ‘질서 있는 퇴진’과 궤를 같이 한다. 질서 있는 퇴진은 여야가 합의로 풀어내야 하는 정치적 해법이다. 여야 간 협상이 잘 이뤄질 경우 국정 정상화까지 속전속결도 가능하지만 반대일 경우 법적 제약이 없는 만큼 허송세월 할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여야가 질서 있는 퇴진으로 가닥을 잡으면 ‘대통령 퇴진 시점 결정→여야 합의 총리 추대→과도내각 구성 및 대선 관리→대통령 퇴진→조기 대선(퇴진 후 60일 이내)’의 시간표가 나온다. 국가 원로 20여명이 권유한 대로 대통령 하야 시점을 ‘내년 4월’로 잡으면 조기 대선은 내년 6월 정도에 가능해진다.

하지만 질서 있는 퇴진은 헌법ㆍ법률에 나와 있지 않는 절차다. 퇴진 시점을 놓고 여야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땐 진척을 장담할 수 없다. 과도내각 기간 2선으로 후퇴한 대통령이 어디까지 권한을 내려놓을지도 합의된 게 없다. 가령 헌법 제86조2항은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여야가 추천한 총리가 대통령 지시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 시에는 총리가 권한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한 헌법 제71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질서 있는 퇴진은 여야, 여당 내부, 여야 대선주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상황에서 국회가 그 질서를 짜라는 것으로 혼돈의 시간이 될 수도, 정치가 진일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법 질서에 따른 '탄핵'

탄핵은 헌법 절차에 보장된 퇴각 방법이다. 이미 야권과 여당 내 비주류 간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퇴진 시나리오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국회가 걸어본 길이기도 하다.

‘국회 탄핵안 발의→탄핵안 가결시 대통령 직무 정지→헌법재판소 심판(최대 180일) 및 결정(재판관 7인 이상 출석 6인 이상 찬성)→조기 대선’의 흐름이다. 여기서 변수는 헌재의 탄핵심판 기간이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 결정까지 63일이 걸렸다. 다음달 9일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고 가정할 때 헌재 탄핵심판 기간이 180일을 전부 채울 경우엔 8월쯤 대선이 치러진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헌법상 국회가 대통령의 진퇴 여부를 정할 수 있는 길은 탄핵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탄핵안이 처리되면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황교안 총리가 탄핵 결정 때까지 사실상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야권은 아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에게 묻는 '임기단축 개헌'

이날 “대통령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비춰 퇴각의 방법론으로 임기단축 개헌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무성하다.

임기단축 개헌은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헌법 제70조의 부칙 조항에 임기 제한 내용을 넣자는 방안이다. 이미 여권 일각에서 이 같은 제안을 내놓은 상태이고,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직후 국회 개헌특위 구성에 공감대를 이룬 만큼 현실성이 적지 않은 시나리오다.

임기단축 개헌은 탄핵보다 퇴각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국회가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되면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까지 최장 180일이 걸리는 것과 비교된다. 현재 여야 의원 200명 이상이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어 개헌안 통과를 위한 의결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 이상)는 채운 상태다.

다만 임기단축만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으로 갈지가 결정된 것은 아니어서 개헌이 신속한 퇴진의 발목을 잡는 의외의 복병이 될 수도 있다.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5년 대통령 단임제를 손질하는 권력구조 개편도 하자는 목소리가 분출할 수 있고, 기본권뿐만 아니라 지방분권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개헌 요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헌법학계에서 임기단축 개헌이 가능한지에 대해 확실한 유권해석이 나온 것도 아니다.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돼 있는데, 임기단축을 위한 개헌도 해석에 따라선 박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세번째 대국민담화를 하기 위해 춘추관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옆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고영권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세번째 대국민담화를 하기 위해 춘추관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옆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고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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