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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국회 ‘조약의 체결ㆍ비준 동의권’ 강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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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지지율 5%에 머문 이 정권은 야당과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가서명했다. 이 협정은 양국 간의 군사정보 공유를 국가 간 협약으로 의무화하려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 때에 비밀리에 진행하다가 중단된 바 있다. 국방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무엇이 급했던지 국민적 공감대도 얻지 못한 채 ‘졸속’ 처리하고 있다.
이번에도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협정이 헌법에 규정한 국가의 안전보장 및 주권의 제약에 관한 사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법 제60조 1항은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로 규정하고 있다.
대외협정이 문제시된 것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정권은 ‘국가안보’를 유난히 강조했지만, 국가의 대외적 자주성이 그만큼 고양된 것은 아니다. 국가의 안보와 국가의 자주가 따로 놀고 있었던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안보를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국가의 주체성을 훼손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국가안보가 북으로부터의 것이라면, 그 안보 때문에 동맹국과의 관계에서 국가 주체성에 훼손이 가해지고 있었던 셈이다. 국회가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동안 박근혜 정권이 미국 일본에 대해 석연치 않은 협약이나 자세를 취해왔지만, 그럼에도 국회는 ‘조약 체결ㆍ비준 동의’의 권한을 좀처럼 내세우지 않았다. 정부의 독단성을 용납했다면, 국회는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을 대표한 국회가 행정부의 대외굴욕적인 협약에 제동을 걸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타난 것만 하더라도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무기한 이양한 것이나, 일본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국민의 뜻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 사드 배치 문제와 개성공단 폐쇄 문제, 그 밖에 주한미군지휘협정(SOFA)이 있다. 이것들은 국민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도 행정부는 자의적으로 처리했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만 해도 그렇다. 1950년 7월, 불리한 전황 속에서 이승만은 국군의 평ㆍ전시작전통제권을 유엔군에 이양했다. 노태우 정부 때 제기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1994년 말 평시작전통제권을 이양받는 데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는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진력했다. 한ㆍ미는 2012년 4월 전시작전권의 한국군 이양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2015년 12월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는 그마저 2020년대 후반으로 연기해 버렸다. 이게 안보를 입에 달고 다니는 보수 정권의 민낯이다. 국회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에 아예 오불관언의 자세를 취했다.
그 동안 외국과의 협약에서 국가 자주성 문제와 관련, 국회의 태도는 모호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행정부에 위임된 사항으로 과신했거나 보안상의 문제 등이 이유로 꼽혔다. 여기에는 또 헌법 제60조의 해석과 제60조에 따른 법률이 국회의 동의권을 지나치게 제약했을 수도 있다. 만약 하위법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국회는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개정ㆍ강화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예에서 보이듯이, 정부가 대외협정체결에서 국회의 비준ㆍ동의를 꺼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말 대일관계에서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주권사항이 손쉽게 탈취당했다.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었을 때, 혼군(昏君)이나 소수 각료를 위협하여 외교권도 국방권도 빼앗아갔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사소한 듯이 보이는 국제협약이라도 국회와 공론화를 거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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