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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생차사(車生車死)’ 남자들과 애마의 특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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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에게 자동차는 교통수단 이상의 특별한 존재다. 잠을 덜 자면서도 부지런히 돌보고, 먹고 입는 걸 줄이더라도 차에는 아낌 없이 투자하곤 한다.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지난달 23일 인천 서구의 자동차매매단지 엠파크 허브에서 열린 ‘2016 한국일보ㆍ테스트드라이브 카쇼(Car Show)’에 참가한 200여대의 차들 중에서도 이런 남자들과 그들의 ‘애마’에 얽힌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나를 잡아 끈 건 18년간의 기록
한 수입차 업체 정비전문가 박정수(29)씨가 올해 카쇼에서 선보인 차는 1988년식 ‘BMW e28 M5’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BMW 고성능차 M시리즈의 1세대 모델이다. BMW는 이 차를 2,100대만 수제로 한정 생산했고, 현재 전 세계에 100여대만 남아있다.
박씨는 미국에서 유학한 2013년 교회 지인의 소개로 시애틀의 한 사설창고에서 e28 M5를 처음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차를 어떤 할머니가 판다고 해서 가봤더니 7년 동안 한번도 타지 않아 먼지가 잔뜩 쌓였고 시동도 걸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주행거리가 18만 마일(약 29만㎞)로 적지 않았지만 무사고에 원형 그대로라 박씨는 밀린 창고비용까지 치르고 차를 인수했다.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차 안에는 창고에 들어가기 전까지 18년간 전 주인이 기록한 정비내역과 차 관련 정보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박씨는 “꼼꼼한 기록에서 차에 대한 전 주인의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며 “시애틀의 할머니가 창고비를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는데도 7년이나 차를 처분 못한 건 아들이 끔찍이 아꼈기 때문이란 걸 나중에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기록을 이어가기로 마음 먹은 박씨는 이듬해 귀국하며 이사화물로 차를 들여왔다. 그는 “이전까지 한 대도 수입된 적이 없어 인증 서류를 직접 챙기느라 고생했고, 수리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나의 추억, 나의 사랑 엑셀
경기 수원시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민봉기(41)씨의 애마는 현대자동차의 91년식 ‘엑셀밴’이다. 남들에겐 별 감흥 없는 구식차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하다. 95년 친척이 물려준 생애 첫 차 엑셀로 민씨는 지금의 아내와 전국을 누비며 데이트를 즐겼다. 잦은 고장으로 3년 뒤 폐차했지만 그는 추억이 담긴 엑셀을 잊지 못했다. 그러던 2014년 우연히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폐차 직전의 91년식 엑셀밴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2년여에 걸친 민씨의 ‘엑셀 부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엔진을 포함해 내외관 전부를 뜯어 고쳤다. 부품 확보가 여의치 않았던 민씨에게 현대모비스에서 어렵게 구한 24년 전 부품 카탈로그는 성서와도 같았다. 퇴근 뒤 주차장에서 차와 씨름하고, 주말이면 전국의 자동차 장인들을 찾아 다니며 작업을 해야 했지만 마음은 늘 즐거웠다. 이렇게 재탄생한 엑셀밴을 민씨는 올해 카쇼에서 선보였다.
차를 복원하며 추억도 함께 살아났다. 민씨는 대학생 시절 아내를 태워 처음 다녀온 여행지인 춘천을 20년 만에 복원한 엑셀을 타고 다시 찾았다.
민씨의 목표는 올드카를 건강하게 즐기는 것이다. 어느새 자동차 전문가가 된 그는 차량가 100만원 미만 차들의 경주인 ‘언더100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다. 민씨는 “신차도 좋지만 추억이 묻은 차를 사랑하고 교류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 태어난 친구여!
성우 배한성씨는 연예계에서 소문난 자동차 애호가다. 부전자전인 듯 아버지의 차 사랑은 그의 아들 민수(24ㆍ대학생)씨에게로 이어졌다. 지난 7월 군복무를 마친 민수씨는 92년식 ‘BMW e30 320i 컨버터블’을 끌고 이번 카쇼에 참가했다. 아버지가 2013년 중고로 구입한 차인데, 공동명의로 올려줘 그에게는 생애 첫 차다.
민수씨는 행사일 오전 BMW의 상징인 전면부 ‘키드니(신장) 그릴’을 새것으로 교체하느라 분주했다. 웬만한 소모품은 직접 갈아 끼울 수 있고, 20년이 넘은 차지만 부품도 충분히 확보해 둔 상태다. 아버지가 틈틈이 모아놓은 것이다. 때문에 클래식카 동호회원들도 부품을 구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을 하곤 한다. 민수씨는 “92년생 동갑이라 그런지 차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이자 친구로 느껴진다”며 “집에서는 비실거리다가도 병원(정비소)에만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 아픈 척 하는 참 웃기는 녀석”이라고 덧붙였다.
민수씨는 집안에 큰 차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는 디자인이 예쁜 배기량 2,000㏄ 이하만을 고집하셨다”며 “얼마 전엔 요즘 나온 고급차를 한번 타고 오시더니 ‘너무 편하고 좋은데 심심하다’며 고개를 저으셨다”고 전했다.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민수씨지만 지금은 연예계보다 차에 흠뻑 빠져 있다. 그는 “차가 너무 좋아 차 관련 사업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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