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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뜻” 내세운 최순실과 측근들의 ‘기업 갈취’

입력
2016.11.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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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배후에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측근들에 얽힌 비리 의혹이 매일 폭로되고 있다. 청와대를 ‘모금책’으로 활용한 이들의 행각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1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직접 기금 모금을 지시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사실로 확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씨와 측근들이 이권을 챙겼다는 수많은 의혹들 중 기업의 돈을 갈취한 사례를 모아봤다.

대기업에 수십억씩 뜯어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

첫 번째로 제기된 의혹은 문화재단 미르 설립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미르는 글로벌 문화교류 행사와 문화 창조기업 육성 사업 등을 통해 국가브랜드를 높이자는 취지를 가진 민간문화재단이다. 그런데 미르는 설립과정에서 대기업에서 5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모금하며 청와대의 지시로 일사분란하게 모금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르 설립을 위해 돈을 댄 대기업들은 삼성 현대 SK LG 롯데 등 16개 그룹 30개 기업으로, 설립 두 달 만에 486억원을 모았다. 지난해 문화재단 기부 모금실적 1위다.

미르재단 설립 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했다. 지난해 10월 25~27일까지 사흘간 전경련이 기업들에게 미르재단 설립 협조 문건 발송하자(25일), 이튿날 해당 기업 관계자들이 서울 강남 팔래스호텔에서 재산출연 서류를 전경련에 제출했고(26일), 바로 다음날 정부의 법인 설립 허가 결재(27일)까지 급박하게 이뤄졌다. 재단 설립 과정에 특혜가 의심되는 것은 물론, 야권 일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일인 10월 26일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비슷한 장면은 올해 1월 재단법인 K스포츠 설립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등 미르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상당수 대기업들의 총 49개사가 보름 만에 288억원을 모금했다.

최순실씨는 두 재단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최씨를 미르와 관련해서 본 적이 있다”, “재단 주인이 누군지 이제 드러났다”고 말한 녹취록이 국정감사에서 공개됐다. 재단 의혹이 터지기 전까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정동춘씨는 서울 강남에서 스포츠마사지센터를 운영하다가 최씨를 만나 재단운영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고, 정현식 K스포츠 재단 전 사무총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씨와 면접을 본 뒤 안 전 비서관이 일을 맡아달라고 했다”며 재단의 주인으로 최씨를 지목했다.

K스포츠, SK에 80억 요구하고 롯데에선 70억 받아

‘대기업 갈취’는 재단 설립에 그치지 않았다. K스포츠재단은 설립 이후에는 전경련도 거치지 않고 직접 대기업에게 자금 출연을 압박했다.

K스포츠재단은 이미 미르재단 설립에 68억원, K스포츠재단 설립에 43억원을 출연한 SK에 80억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K스포츠재단 정현식 전 사무총장은 “지난 2월 29일 처음 SK를 찾아가 80억원 투자 유치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체육인재 해외 전지훈련 예산 지원 명목이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사업을 지시한 인물은 최씨이며 안 전 수석이 이 과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SK는 K스포츠와의 면담과정에서 사업의 구체성 결여와 과도한 투자 금액 등을 이유로 투자금 축소를 요구했고, 막판에는 “조건 없이 30억원을 내 놓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최씨가 “받지 않는 걸로 하자”고 지시해 최종적으로 SK의 추가 자금 지원 계획은 무산됐다.

K스포츠재단 설립에 35억원, 미르재단 설립에 28억원을 출연한 롯데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냈다가 돌려받았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K스포츠재단 관계자는 지난 3월 롯데 측을 만나 경기 하남시 대한체육회 부지에 대형 체육시설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건물 설립 비용 75억원의 추가 자금 출연을 요청했다. 롯데는 70억원선에서 출연금을 전달했지만 지난 5월 K스포츠재단은 ‘부지 확보에 실패했다’며 돈을 모두 롯데그룹에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조사 할 수 있다” 중소기업까지 협박한 차은택측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황태자’라고까지 불리며 영향력을 행사한 광고감독 차은택씨와 그의 측근들 역시 기업 후려치기에 동참하며 이권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차씨의 측근들은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인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 광고업체에 지분 80%를 매각하라고 압박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차씨의 광고계 측근인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지난해 6월 중소 광고업체 A사 대표 B씨를 만나 “포레카 지분 80%를 ‘그들’에게 넘기지 않으면 회사와 광고주를 세무조사하고 당신도 묻어버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송씨뿐만 아니라 포레카의 김영수 대표도 B씨를 만나 회유한 녹취록까지 드러나면서 차씨 측이 포레카를 인수한 A사의 지분을 넘겨받아 포레카를 우회적으로 인수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글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디자인 백종호 디자이너 jong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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