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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칼럼] 총체적 위기, 조기 대선이 답이다

입력
2016.11.01 20:00

대통령 권위ㆍ신뢰 실추로 이미 식물정부

구조적 경제위기ㆍ북핵 위협에 대응 불능

조속히 새 대통령 뽑을 정치일정 합의를

지난주 JTBC 보도 이후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우리사회의 모든 관심을 집어삼킨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비화했다. 풍문으로 떠돌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든 국민이 커다란 충격을 받고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필자 역시 욱하는 심정과 정제되지 못한 표현을 주체할 수 없는 열흘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모두 잃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은 민주공화국과 양립할 수 없는 헌법 유린이다.

과연 박근혜정부가 앞으로 남은 1년4개월의 임기 동안 정상적인, 아니 최소한으로 필요한 정부의 기능을 수행할 수는 있을까? 경제 상황과 남북관계가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의 위기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총체적 위기로 내몰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0.7%에 불과했다. 그나마 부동산 호황과 정부의 추경 조기 집행의 결과였다. 그러나 4분기부터는 본격적 성장절벽에 맞부딪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듯이, 한국경제의 저성장은 경기변동적 요인보다는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하고 있다. 특히 GDP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이 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는 위기가 저성장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부품소재와 기계장비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산업의 진화가 단절된 한국경제는 최종재 중심인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해운·조선·철강·건설·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이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좋아질 기미가 없는 수출환경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혁신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경제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촉발된 한반도 긴장 상황에서 남북 및 외교 분야에서의 정부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엄중한 시점이다. 미국 조야에서 산발적으로 흘리고 있는 선제적 타격 주장을 남의 집에 난 불처럼 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만약에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 타격이 감행된다면, 우리 국민의 안위와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곧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권위와 신뢰를 잃은 대통령과 정부가 과연 외교와 안보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 정부는 이미 식물정부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거국중립내각’이 정치권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식물대통령-중립내각’으로 이와 같은 총체적 위기를 타개할 수는 없다. 물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의 하야가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대통령이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총리가 남은 1년4개월의 국민 안위와 경제를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런 1년4개월은 혼돈·정쟁·무책임으로 대한민국을 더 큰 위기로 내몰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거국중립내각 구성, 대통령 자진 사퇴, 내년 초 조기 대선’에 대한 정치일정을 조속히 합의해야 한다. 이로써 식물정부 또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인한 공백과 조기 대선의 문제점을 최소화하면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총체적 위기 극복의 책무를 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 국가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아직 가지고 있다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방조자이거나 사실상 조력자인 새누리당이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지 않으려면, 야권 각 정파가 정략적 이해득실을 넘어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냉정히 생각한다면, 거국중립내각만으로 현재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알 것이다. 대통령도 정치권도 구태에 빠져 희망이 없다면,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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