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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가 현실로… “누구말 믿나” 괴담 빠진 한국

입력
2016.10.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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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ㆍ순실 모녀의 邪敎 영향

주술적 내용이 음모론 지배

오방낭 행사ㆍ미르재단 이름

朴, “우주” 발언도 종교와 연결

세월호 인신공양설까지 돌아

“비상식적 사건 접하자 신뢰 바닥…정보 부족도 상상력 부추겨”

최순실 게이트 패러디.
최순실 게이트 패러디.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 농단 파장이 커지며 각종 괴담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광우병 사태, 세월호 참사 때 비슷한 유언비어가 사회를 뒤덮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보기관이나 대기업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주술과 종교가 음모론을 지배하고 있다. 여느 때라면 우스갯소리로 넘길 이야기마저 ‘정말 그런가’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심각한 신뢰 붕괴에 빠졌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우선 대통령의 공식 행사와 발언들을 모두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장에는 무속 신앙의 상징인 오방낭(흑ㆍ백ㆍ청ㆍ홍ㆍ황 등 5가지 색 주머니로 우주 기운을 상징)이 등장했는데, 이 행사에 최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종교적 이유로 국가 행사를 기획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공식 일정 의상 색깔을 일일이 골라준 사실도 비슷한 맥락으로 비치고 있다. 그러면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2015년 4월 중남미 순방 당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2015년 11월 국무회의) 같은 박 대통령의 발언 역시 최씨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을 연결시키면 ‘미륵’이 되는데 미륵은 최씨의 선친 최태민씨가 스스로를 이르던 말”이라는 말도 항간에 떠돈다.

이러한 루머는 박 대통령이 젊은 시절 의지했던 최태민씨가 1970년대 초 불교ㆍ기독교ㆍ천도교를 합쳐 영생교를 만든 교주이고, 딸 최순실씨가 영적 후계자라는 사실과 연결돼 있다. 애초에 최태민씨는 “꿈에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를 봤다”며 박 대통령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세월호 참사조차 최씨 일가와 연관됐다는 음모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대통령의 7시간’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참사 직후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행적이 불분명한 이유가 최태민씨 20주기(음력 3월 21일, 2014년에는 4월 20일)를 앞두고 굿을 벌이느라 그랬다는 루머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최태민씨 20주기를 위한 인신공양(人身供養)으로 의도된 사고라는 황당무계한 유언비어는 그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입 밖에 내기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는 바람에 이 같은 유언비어가 생명력을 얻고 번성하고 있다. 아무 자격과 전문성 없는 ‘비선’ 최씨가 대외비인 대통령 연설문을 버젓이 받아보고 수정하는 등 국정을 농락한 사실부터 현실에서 일어나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괴담이 사실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28일 “선출직 대통령이 국민이 잘 모르는 사람과 국정을 운영했다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고 몰상식한 일이기 때문에 근거 없는 루머들마저도 확대ㆍ재생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호선 영남대 심리학과 교수도 “정부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상식적 기준이 완전히 무너지다 보니 루머가 걷잡을 수 없어졌다”며 “상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충격이 컸다”고 해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덕에 통로가 커지고 속도는 빨라졌는데도 정확한 정보는 부족한 환경이 루머 확산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팩트(사실)가 은폐됐거나 사실 접근이 차단돼 있는 상황에선 상상력이 동원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진상을 명백히 규명하는 것만이 무분별한 의혹을 정제하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같은 블랙 박스가 존재하지 않아야 유언비어가 잡힌다”며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단편적 정보들을 쏟아내기보다 사안 전체를 조망하는 기사를 언론이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최순실 게이트 패러디.
최순실 게이트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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