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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바라 보지 못한 너… 박 대통령의 ‘피켓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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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은 우리 현대사의 주요 이슈 현장에 등장했다. 학생과 노동자, 농민, 정치인 할 것 없이 자신의 주장과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피켓을 들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규탄 대상 또는 의혹 당사자 앞에서 피켓을 들이대기도 한다. 특히, 그 대상이 거물급일 수록 피켓과의 극적인 만남은 카메라에 포착돼 역사적 장면으로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독 피켓과 인연이 많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은 스스로 ‘국회를 존중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의지’라고 강조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때마다 피켓과 마주쳤다. 그 짧지만 강렬한 만남은 매번 대통령의 외면으로 끝이 났다. 국민적 합의와 소통이 절실한 사안마다 불통과 밀어붙이기로 일관해 온 그의 통치 스타일이 피켓 들이대기를 자초한 것은 아닐까. 박 대통령과 피켓의 결정적 조우, 그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2013년 11월 18일 취임 첫 시정연설에서 박 대통령이 마주친 피켓은 ‘정당 해산 철회’였다. 당시 김선동, 김재연 등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삭발을 하고 마스크를 쓴 채 진보당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같은 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기소와 정부의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반발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시정연설을 마쳤고 통합진보당은 이듬해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해체됐다.
2014년 10월 29일 두 번째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선 박 대통령은 노란색 피켓과 조우한다. ‘세월호의 진실 못 밝히나요? 안 밝히나요?’ 대통령은 국회 본관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한 것은 물론 연설 내용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 애들을 살려 주세요’라는 유가족의 외침을 외면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유가족뿐 아니라 진실규명에 목마른 국민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지난해 10월 27일 세 번째 예산안 시정연설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선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피켓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정국을 휩쓸던 당시 정의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박 대통령의 동선인 국회 본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본회의장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각자의 노트북에 ‘국정교과서 반대’ ‘민생우선’이라고 쓴 피켓을 붙였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당 의원들이 피켓 철회를 요구하면서 이 날 시정연설은 15분 가량 지연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퇴장하는 동안에도 기립하지 않고 앉은 채로 항의 시위를 이어 갔다.
올해 예산안 시정연설은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열렸고 피켓은 또 어김 없이 등장했다.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이 ‘#그런데 비선실세는?’ ‘비리게이트 규명’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고 박 대통령은 ‘#나와라_최순실’이라는 피켓을 눈 앞에 둔 채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결국 하루 만에 대통령 스스로 의혹을 시인하고 또 다른 의혹들마저 꼬리를 물고 불거지면서 사진 속 이 순간은 또 하나의 결정적 장면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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