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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화계 뼈아픈 자성 촉구하는 추악한 성추행 파문

입력
2016.10.23 20:00
수정
2018.08.22 15:25

문화계가 부끄러운 성 추문에 휩싸였다. 문학, 미술, 웹툰 등의 분야에서 꽤나 이름있는 인사들이 연루된 데다 추문이 대부분 관련 분야 지망생 등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갑질’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성추행 폭로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폭로가 잇따르는 사실만으로도 문화계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관련 인사들은 잘못이 있으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필요할 경우 조사에 응하는 등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유명 작가 박범신이 수필집 출간에 즈음한 술자리에서 보여준 언행은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하다. 자리에 함께한 방송작가의 신체를 만지고, 작가의 소설 ‘은교’에 나오는 여고생의 이름을 따 동석한 여성들에게 “늙은 은교” “젊은 은교”라고 불렀다는 증언까지 나왔으니 이제껏 우리가 알아온 그 작가가 맞나 싶다. 일부 동석자가 “성희롱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며 작가를 옹호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누구라도 수치심을 느꼈다면 작가의 책임이다.

함영준 일민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자신의 이름값을 이용해 미술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을 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웹툰 작가 이자혜는 미성년자 성폭행을 방조하고 심지어 그 내용을 만화로 그렸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최근 며칠 사이 불거진 사건만 이 정도니 피해를 보고도 참아 넘긴 것까지 합치면 추문이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성 추문 의혹 인사 중 일부는 평소 여성의 인권을 유난히 강조해왔으니 그들의 이중성에 할 말을 잊게 된다.

이들의 언행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한 권력 행사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흔히 문화 활동을 위해 관습을 초월하라고 하는데 이들은 그것을 고루하고 편협한 사고를 넘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휘가 아니라 문화계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갑질로 혼동한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두 성희롱 문화가 일상화하고 풍류남아적 기질이 용인되어서 일어난 일들일 것이다. 문화계는 이 참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리고 즐겨온 저속한 문화를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비슷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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