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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부검영장 집행 충돌 직전까지

입력
2016.10.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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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오늘은 철수” 강조

3시간 만에 해산… 명분쌓기인듯

시민들 바리케이드 등 설치 저지

악화된 여론 속 유족 설득안 고심

사수 의지 높이는 시민단체

경찰 철수 후 1000여명까지 늘어

“내일 영장 만료… 또 진입 나설 것

시신 탈취 결사적으로 막겠다”

홍완선(오른쪽)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23일 오전 고 백남기씨 부검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이를 막아선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완선(오른쪽)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23일 오전 고 백남기씨 부검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이를 막아선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23일 고 백남기씨 시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 집행을 강제로 시도하려다 유족과 시민들의 반발에 밀려 중단했다. 경찰이 영장집행 시한(25일)을 앞두고 부검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이날 오전 10시 부검영장 집행을 전격 단행했다. 종로서는 30분 전 백남기투쟁본부 측에 영장집행 방침을 통보하고 8개 중대 900여명의 경찰력을 백씨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 집결시켰다. 이에 전날부터 강제 집행에 대비해 빈소를 지키던 시민 300여명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ㆍ정재호 의원, 정의당 심상정ㆍ윤소하 의원 등이 스크럼을 짜고 병원 입구를 가로막아 물리적 충돌 우려가 커졌다. 시민 100여명은 장례식장 1층에 노란색 천막과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일부는 몸에 쇠사슬을 이어 묶는 등 결사 저지 태세를 보였다.

경찰은 결국 강제진입 시도를 포기했다. 경찰은 “유족과 만나 부검 반대 의사를 내비치면 오늘은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백씨의 큰 딸 도라지씨가 “강제집행을 위한 대화 꼼수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3시간 만인 오후1시17분쯤 경력을 해산시켰다.

이날 경찰의 강제집행 시도는 부검 명분을 축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찰은 이미 유족 측에 6차례 부검 협의를 제안한 바 있다. 이날도 물리력을 동원하기는 했으나 지난달 28일 법원이 부검영장을 발부하면서 ‘유족과의 협의’를 집행 전제 조건으로 내건 점을 감안해 “유족 의사를 존중해 철수하겠다(홍완선 종로서장)”는 입장을 거듭 반복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관계자는 “법원의 이행 조건을 어기고 강제로 부검을 해 봤자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게 뻔해 무리수를 두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화하고 있는 여론 탓에 경찰은 섣불리 영장집행에 나설 수도 없는 처지다. 경찰은 백씨 죽음을 ‘병사’로 기재한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를 근거로 부검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외인사’라는 의료계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또 최근 지난해 백씨가 쓰러질 당시 ‘경찰 물대포에 의한 부상 정황’을 입증하는 상황속보까지 공개되면서 부검 주장 논리는 더욱 옹색해진 형국이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영장집행에 실패한 직후 잇따라 회의를 열고 강제집행을 다시 시도할지를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부검을 해야 한다는 여론도 분명 존재하고 영장을 재신청 해도 법원이 다시 집행을 허가할지 장담할 수 없다”며 “유족을 설득해 집행 기간 안에 부검을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영장 강제집행 의도를 분명히 하면서 백씨 시신을 사수하려는 유족과 시민ㆍ사회단체의 의지는 한층 공고해졌다. 이날 오전 300여명에 불과하던 서울대병원 빈소 주변의 시민 규모는 경찰 철수 이후 1,000여명까지 불어났다.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 지하 1층을 지키고 있는 대학생 소모(19)씨는 “경찰이 유족 동의 없이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탈취하려 한다면 법 집행 기관으로서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져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석운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는 “경찰이 이제 명분을 충분히 쌓았다고 판단한 만큼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빈소 강제 진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며 “영장집행이 만료되는 25일까지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과 함께 강력한 저지선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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