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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겨우 짬내 아이랑 외출했더니…“홀아비?” 따가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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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노동시간 OECD 2위
낡은 조직문화로 야근 당연시
아빠들 “애들과 보낼 시간 부족”
수유실은 남성 출입금지 곤혹
교사들도 아빠와 상담하기 꺼려
백수처럼 안 보이려 옷 신경도
“육아는 여성 책임” 편견이 남성들 육아참여까지 제한
당신 주위에는 ‘친구 같은 아빠’가 몇 명이나 있는가. 이들이 최근 몇 년 새 가장 이상적인 아빠상으로 자리잡았지만 막상 찾아보면 흔치 않다. 오히려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주부, 똑같이 일하면서 육아는 왜 늘 내 몫이냐고 언성을 높이는 워킹맘들만 도처에 넘쳐난다. 육아와 교육에 참여하고 싶지만 일과 사회인식이라는 커다란 장벽 앞에 가로막힌 아빠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아빠의 ‘시간빈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A(46)씨.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회사에서 해결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9시30분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9)과 유치원생 딸(6)은 잠들어있다. 몇 년 전 정부 주도로 시작된 매주 수요일 ‘가정의날’엔 회사도 정시 퇴근을 권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직원들만 가능할 뿐 과장인 A씨는 수요일에도 예외가 없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A씨와 반대로 아이들은 아빠의 부재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녁에 전화해 “언제 오냐”고 독촉하던 아들은 올해부턴 전화가 뜸하다. A씨는 “애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너무 바빠서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은 없는, 일종의 시간빈곤에 허덕이는 것이다.
친구(Friend) 같은 아빠(Daddy) ‘프렌디’를 꿈꾸는 아빠들은 대개 고질적인 장시간근로라는 거대한 장벽과 맞닥뜨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34개 OECD 국가 평균(1,766시간)보다는 347시간이나 많은 것으로, 하루 8시간 한 달 22일 근무할 경우, OECD 평균보다 두 달이나 더 일하고 있다. 저임금 근로자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고임금 근로자는 ‘야근=성실함’이라는 조직문화 때문에 대부분의 근로자가 하루 종일 일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박한 꿈조차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A씨는 “퇴근 시간이 당겨진다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리고 잠들고 싶다”고 했다.
흔치 않은 결정을 한 아빠도 있다. 20대부터 교육 관련 기업에서 일해온 배정인(40)씨는 2년 전 교육시민단체로 직장을 옮겼다. 가깝게 지내던 회사 임원이 야근과 회식으로 가족에게 소홀해져 이혼위기까지 몰리자 가족을 호주로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다. “떨어져 살면 신경은 못 쓰지만 돈 보내주면 좋은 아빠 역할 반쪽은 할 수 있다”던 그 선배를 보며 돈 잘 버는 아빠, 좋은 아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배씨는 직업을 바꾼 후 월급이 반토막 났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얻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딸(8)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육비 등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배씨는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다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건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백수? 홀아비?
아빠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건 회사 밖에도 수두룩하다. 전남대 연구원인 정대근(38)씨는 아내 출근 후 막내 딸(6)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초등학교 3학년 아들(9)의 이번 학기 학부모 상담도 갔다. 정씨는 “아침 출근 시간 이후에 아이와 돌아다니면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며 “교사조차 아빠가 학교 상담에 오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남성 출입금지 수유실부터 엄마 없이 자녀와 외출한 아빠에게 향하는 ‘홀아비인가, 백수인가’하는 곁눈질까지. 프렌디 시대에도 여전히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낡은 관념이 사회 구석구석, 그리고 우리 안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고2, 중1 두 자녀 육아에 적극 참여해 온 문화평론가 정덕현(47)씨는 아내 없이 자녀들과 외출할 일이 생기면 옷을 일부러 더 잘 차려 입고 나간다. ‘백수’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아빠 육아는 노동보다 아빠들을 바라보는 편견이 더 힘들다”며 “육아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남성이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육아는 여성이 주책임자라는 편견이 여성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남성의 육아 참여까지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한 부모 역할에 대한 인식 정립이 시급하다”며 “모든 근로자가 아플 때 병가를 가는 것처럼 모든 남녀 근로자가 근로생애의 일정 기간은 반드시 부모 역할을 하는 시기라는 것을 기업과 사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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