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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엄마의 시간은 어디에

입력
2016.10.13 16:53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길이 설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엄마에게 퇴근은 또 다른 노동, 육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육아도 노동은 노동이다. 집에 돌아와서 대충 저녁을 차려서 먹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숙제와 준비물을 점검하고, 씻기고 자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간신히 재우고 나면, 나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피곤함 속에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아이들 등교를 준비하고 둘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면서 출근을 하니, 나의 하루는 일 아니면 육아로 거의 채워지는 셈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영화관에 가는 일은 연중행사가 되었고, 책 한 권 읽는 일도 때론 버겁다. 운동도 할 시간이 없다. 연차휴가도 유치원과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써야 한다. 일하는 엄마들의 일상은 대체로 그러하다. 문득 나의 시간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별로 여유로운 삶을 즐겨본 적이 없이 공부 또는 일을 해온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바쁜 일상에 큰 불만은 느끼지 않고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서 다시 유아기를 경험하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 일도 육아도 해방된 시간을 누릴 때면, 아이들 없이 조용히 보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나 달콤하고, 때론 좀 더 책도 찾아 읽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활동의 폭을 넓히고 싶은 아쉬움도 생긴다. 다만 굳이 이런 생활의 장점을 찾는다면, 회사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늘 노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직장인이 겪는 월요병이 없다는 것이다. 주말 내내 아이들과 보내면서 집안일도 하고 나면, 월요일 회사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때조차 있다.

이러한 노동의 연속인 생활이 바람직한 것일까. 일하는 엄마들은 여가생활이나 자기 계발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가. 일도 육아도 중요하지만, 엄마들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위를 보면 일하는 아빠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자기 계발이나 여가 확보에 좀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보통 가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이 이유인 것 같다. 비정상적으로 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겠지만, 한쪽의 노동시간만 줄어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줄어든 노동시간이 돌봄노동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ㆍ가정 양립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며 시간제 일자리 같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데, 일견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하다. 현재 많은 일ㆍ가정 양립 정책과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을 일차적 지원대상으로 보고 양육 역시 여성의 역할로 전제하고 설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도 심하고 가정 내에서의 성 역할도 고정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일ㆍ가정 양립 정책마저 이렇게 이루어지면, 여성은 적당히 일하면서 집안일, 육아도 전적으로 책임지라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일ㆍ가정 양립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그냥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노동을 하라는 거다. 일하는 엄마의 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일도 육아도 가사도 남녀가 공평하게 나누어야 진정한 일과 삶의 양립이 가능하다.

실제로 여성을 중심으로 일ㆍ가정 양립 정책을 추진해 온 독일의 경우,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통하여서 일ㆍ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여 출산율을 올리고자 한 시도는 성별 격차만 만들어 낼 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즉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를 하면서 아이 양육까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일ㆍ가정 양립 정책을 좀 더 성 평등에 맞춰 설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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