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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하는 사람 유니온’ 봇물… 하소연 모여 긍정 에너지로

입력
2016.10.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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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외에도 갖가지 ‘○○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적게는 10명 이하부터 많게는 100명 이상의 회원을 두고 현재 페이스북 상에서 활동 중인 각종 유니온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우선 ‘○○ 못하는~’으로 일종의 돌림자를 쓰는 유니온만 해도, ‘연애 못하는’ ‘영어 못하는’ ‘개그 못하는’ ‘술 못하는’ ‘요리 못하는’ ‘살림 못하는’ ‘화장 못하는’ ‘공부 못하는’ ‘설교 못하는’ ‘취업 못하는’ ‘인간관계 못하는’ ‘노래 못하는’ ‘책상정리 못하는’ 등으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단연 압권은 ‘다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다.

‘못하는’이란 단어를 쓰진 않지만 유사한 의미의 유니온들도 많다. ‘혼나는 사람 유니온’(혼나유) ‘말 실수하는 사람 유니온’ ‘글 못쓰는 사람 유니온’ ‘옷 못 입는 사람 유니온’ ‘인기 없는 사람 유니온’ ‘그림 못 그리는 사람 유니온’ ‘길 못 찾는 사람 유니온’ 등이다.

이들은 왜 스스로를 ‘○○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걸까.

연애, 개그 등 거의 모든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가입했다는 직장인 최정엽(32ㆍ가명)씨는 “모임에선 그 어떤 ‘못하는 행위’도 다 용서 받을 수 있다”며 “도리어 내 실수담이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고, 어려운 상황을 버틸 힘을 준다는 데서 나 또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연애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인 신연재(27ㆍ가명)씨는 “대부분 사람들은 어디서든 자신을 더 예쁘고 화려하게 꾸미기 바쁜데, 유니온에선 모두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며 “이들의 작은 투덜거림, 하소연 하나하나가 모여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병유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조건 과오를 숨기는 걸 미덕으로 여겼고 마땅히 이를 드러낼 통로도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찾고 상호작용을 통해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심리학에서는 힘들었던 상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치유효과를 가진다고 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의 공간이라도 상처를 털어놓고 위안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식의 위안에 사로잡혀 모든 단점을 합리화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곽 교수는 “’다른 사람도 이렇구나’라는 순간의 위안에 그쳐야지 ‘나는 못하는 사람이니까’라며 모든 일에서 자신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본인 스스로 이를 어떻게 해쳐나갈 수 있을지 방법을 강구해야 결국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못하는 사람 유니온 같은 움직임이 반복되고 커지는 걸 사회 전체로도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노동시장에서 사람이 상품화되면서 이들을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해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패배자로 전락했다”며 “예전엔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스러졌지만, 지금처럼 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밖으로 새어 나오고 조직화된다면 약자들이 존중 받는 사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등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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