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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마 아저씨', 곡성과 무한도전을 말하다

입력
2016.10.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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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무라 준, 부산영화제 참가 위해 내한

"유재석 등 '무도' 멤버 대단한 프로페셔널"

일본배우 구니무라 준은 "한국에 오자마자 불고기를 먹었다"며 크게 웃었다. 부산=라제기 기자
일본배우 구니무라 준은 "한국에 오자마자 불고기를 먹었다"며 크게 웃었다. 부산=라제기 기자

연기 생활 35년. 하지만 한국 대중에게는 낯선 얼굴이었다. 열성 영화팬이 아니라면 이름은커녕 존재조차 잘 몰랐던 일본 배우는 환갑에 출연한 영화 ‘곡성’으로 한국에서 깜짝 스타가 됐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에 출연하며 안방에까지 얼굴을 알렸다. 구니무라 준(61·國村準)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눈길을 잡는 일본 배우다.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지난 8일 부산을 찾은 그는 연신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9일 오후 한국일보와 만난 구니무라는 “25년 전 영화 촬영을 위해 부산을 처음 찾은 뒤 두 번째 방문”이라고 말했다. 부산영화제에선 ‘곡성’과 그의 최신 출연작 ‘신고질라’가 상영됐다.

구니무라의 연기 이력은 화려하다. 1981년 데뷔해 일본 영화계 대가들의 여러 화제작에 출연했다.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나카시마 데쓰야(中島哲也), 가와세 나오미(河瀨直美), 미이케 다카시(三池崇史), 소노 시온(園子溫), 재일동포 최양일 이상일 등 그와 작업한 감독들의 이름만 열거해도 영화팬들의 눈동자가 커질 만하다. 툭 불거진 눈과 두꺼운 일자 모양의 입 등 다부진 용모 때문에 야쿠자 등 뒷골목 인생을 주로 연기했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그러나 속정은 깊은 서민형 중년 또는 노년 인물도 그의 몫이었다.

'곡성'의 구니무라 준.
'곡성'의 구니무라 준.
영화 '아웃레이지'의 구니무라 준.
영화 '아웃레이지'의 구니무라 준.
'지옥이 뭐가 나빠'의 구니무라 준.
'지옥이 뭐가 나빠'의 구니무라 준.

일본영화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미국 영화계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을 떠올리면 된다. 일본 도쿄 암흑가를 지배하게 된 암살자 오렌-이시이(루시 리우)에게 목이 잘리는 야쿠자 보스 다나카를 연기했다. 타란티노가 도쿄를 방문해 호텔에서 일본영화 DVD를 열심히 보다 구니무라를 발견한 뒤 곧바로 출연을 제안했다. “타란티노가 만나자마자 각본을 내밀더니 ‘내가 상대방 역할을 할 테니 당장 연기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전형적인 야쿠자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타란티노 감독을 너무 좋아해서 역할을 맡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목이 잘려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장면을 나중에 보고 어땠나 물으니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너무 재미있었다. 현장에서 타란티노가 피가 어떻게 솟아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하던 때도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영화 ‘곡성’에서 “와타시와 아쿠마다(나는 악마다)”라며 흉물스런 미소를 짓던 그의 모습이 언뜻 포개졌다. 하지만 경계심은 곧 풀렸다. 그는 어떤 영화나 특정 감독의 이름을 거론할 때마다 설렘이 깃든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소년의 얼굴이 종종 비쳤다. 박찬욱 감독 작품에 잘 어울릴 듯하다고 말하니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

‘곡성’에 이어 ‘무한도전’ 출연까지 했으니 한국 활동을 욕심 낼 만도 한데 그는 손사래를 쳤다. 구니무라는 “한국 관객들이 ‘곡성’을 좋아해주고 즐겨주셔서 ‘무한도전’에서 출연 요청이 온 것”이라며 “한국어도 잘 모르는데 한국 활동을 제가 바란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영화를 알리기 위해 가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경우가 있다”며 “유재석 등 굉장한 프로페셔널 출연자들이 웃음을 이끌어내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공통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올해 개봉작만 4편인 다작 배우답게 구니무라는 두 편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한다. 10일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교토에서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신작 영화 촬영을 하고, 이후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신작 영화 촬영에 합류한다. 그는 “11월 내내 도쿄에 있는 집에 못 들어갈 듯하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딱히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곡성’처럼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도전하고 싶습니다.”

부산=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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