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제재의 고깔모자

입력
2016.10.06 20:00
구독

북한의 성명은 명쾌하다. 필요한 근거만 따서 그렇지 논리는 정연하다. 두괄식인 우리 기사체와 달리 미괄식이라 뭘 말하고자 하는지 끝부분만 읽으면 된다. 또 북한 성명은 비유법을 자주 쓰는데, 기발한 예가 많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비유는 ‘제재의 모자를 쓰고 회담에 나갈 수 없다’는 외무성 성명이다. 6자회담의 성과인 2005년 9ㆍ19 공동성명 뒤에 이어진 미국의 BDA제재로 1년 가까이 교착된 회담 재개 노력과 관련해 나온 반응이다. 북한은 한 달 보름 뒤인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강공으로 제재 모자를 벗고 두 달여 뒤 6자회담에 참가했다. 돌아보면 영변 원자로 가동으로 북핵 위기가 터진 1994년 이후 북핵의 역사는 전쟁 위기와 협상, 타결, 파기, 제재의 도돌이표 같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북한 입장은 손자 대에 이르러 핵 보유국임을 헌법에 명시하는 동시에 ‘세계의 비핵화’로 한층 원대하게 발전했다. 2012년 2ㆍ29합의 후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따라 뒤통수를 맞은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사기 방지 겸 고사 작전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 핵무기 전력화 단계에 이른 5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정부가 대북 강경노선을 가속화하는 반면 중국은 대화 재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협상의 병행이다. 우리 내부에서도 제재 효력이 다했으니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를 통해 문제의 근원을 뿌리뽑고, 항구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수단은 없다. 그러나 평화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 유화정책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대의 성격과 의도에 따라 그 결과가 180도 달라진 역사적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히틀러의 독일이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파리평화회의에서 마련된 조약을 힘으로 무력화할 때조차 영국은 협상을 통한 평화구축의 끈을 놓지 않았다가 끝내 배신당했다. 우여곡절로 점철된 북핵 협상을 기준으로 볼 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느냐가 대화 재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핵실험 10년을 맞은 지금 고깔모자가 아니라 철모를 씌울 태세인 국제사회 제재가 북핵 물줄기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