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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진짜는 있다...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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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만났다. 마음에 든다. 곧 남자친구가 됐고 결혼까지 했다. 운 좋은 만남이 행복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자는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물건 고르듯 쉽게 만난 남자가 남편이 됐다는 점이 영 불편하다. 사회 활동에 적응을 잘 못해 교사 일도 그만 둔 여자 나나미(구로키 하루)는 SNS에서 친구를 찾고 안식도 얻는다.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들을 하객으로 모실 수 없던 그는 SNS를 통해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그런 나나미도 SNS가 오작교가 된 결혼이 가짜처럼 여겨진다.
나나미는 남편의 마음을 의심하다가 하객 동원을 위해 알게 된 대행업자 아무로(아야노 고)에게 남편의 뒤를 밟게 한다.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대행해준다는 아무로는 나나미를 정성껏 도와주는 척하며 그를 인생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다. 아무로의 계략으로 나나미는 억울하게 이혼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거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로의 속내를 모르는 나나미는 아무로에게 더 삶을 의지하고 아무로의 주선으로 자유분방한 여자 마시로(코코)를 만나게 된다. SNS 아이디가 ‘립반윙클’인 마시로는 성 같은 집에서 흥청망청 살며 나나미를 연인처럼 대한다. 나나미는 그런 마시로에 친구 이상의 호감을 느낀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립반윙클의 신부’는 언뜻 SNS가 만들어낸 허상을 들추는 영화처럼 보인다. SNS에서 자신만의 성채를 만든 뒤 SNS로 인연을 맺고, SNS로 만난 사람들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나나미의 모험 같은 행로는 SNS 고발로 읽힌다. 마치 가상세계 SNS가 만들어낸 것들은 허구이자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좀 더 깊이 현대인의 삶을 파고든다. SNS 밖 세상에서도 진짜를 찾기 어렵다. 가족 해체를 오래 전 경험한 나나미는 결혼식 하객 대행으로 만난 가짜 가족들에게서 다정다감한 가족의 원형을 찾는다. SNS를 매개로 마시로를 만난 뒤 뒤늦게 자신의 성정체성도 깨닫게 된다. 현실에 실망하고 현실에서 무기력한 사람들이 SNS에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자족할 방법을 찾는 것 아니냐고 영화는 넌지시 말한다.
염세적인 화법으로 일관하던 영화는 결말부에서 엷은 희망의 불빛을 비춘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하찮게 여기는 아무로가 술을 마신 뒤 한줌의 양심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고 때문에 위기에 처했던 나나미도 살풀이하듯 술판에 끼어드는데 이후 나나미는 두려움 없이 진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나나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처럼 SNS가 매개가 된 기이한 세상에서 기이한 모험을 한 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인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돋보이는 영화다. 인물의 심리 변화가 섬세한 연기로 스크린에 새겨진다. ‘러브 레터’(1995)와 ‘4월 이야기’(1998) 등으로 국내에도 단단한 팬층을 다져 온 이와이 수운지 감독이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장편 극영화다.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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