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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트라우마… “그때 무서웠어” 얘기해도 괜찮아요

입력
2016.10.03 04:40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대학원생 나지윤(28·가명)씨는 첫 연애에서 데이트폭력이라는 치명적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후 사랑이 두렵기만 했다는 지윤씨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도움말을 드립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인터넷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벌써 10여 년 전이네요. 다니던 고등학교의 구석진 복도. 남자친구가 저를 향해 주먹을 치켜듭니다. 놀란 저는 꼼짝을 못하고, 남자친구는 그 거친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쾅쾅 내려칩니다. 제가 기대 선 벽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셔츠 단추를 쥐어뜯고, 물건을 내리쳐 부숴 버립니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왜 그러질 못 했을까요. 치켜든 손이 제 머리를 향해 끝도 없이 내리 꽂히고, 뺨을 휘갈겨대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였어요. 부모님에게도 당해본 적 없는 폭력. 저는 너무 실감이 안 나고 무서워서 자율학습 시간인 것도 잊고 그냥 교실에 들어가서 가방을 쌌습니다.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거든요. 집에 가는 내내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제가 교실에서 사라진 걸 알게 된 그 친구는 전화를 수십 통이나 걸어왔습니다. 집에 도착할 때쯤 받으니 ‘차에 뛰어들겠다, 죽어버리겠다’ 협박을 하며 당장 돌아오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돌아갔네요. 바보 같이 돌아갔어요. 그가 울고 불고 매달리며 사과하고 사랑을 호소했습니다. 잠깐이나마 어찌나 살갑게 대해주든지 사안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주변에 말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처음 한 번이 어렵다는 말, 진리더군요. 7개월을 사귀는 동안 뺨으로, 머리로, 수도 없이 손이 날아들었습니다. 한번 때리고 나니 더 쉽게 손이 올라가는 것 같았어요. ‘○○년’ 같은 욕설도 서슴지 않았고요. 혹시라도 자기 얘기를 할까 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학식 높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였는데 말이죠.

아마도 제겐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나 봅니다. 부모님, 선생님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까지, 저는 굉장히 바르고 착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로 비춰지고 있다는 생각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부모님께는 말씀 드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저를 믿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언제나 저를 지지해 주시는 친구 같은 분들이셨거든요. 차라리 엄한 부모였다면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자유롭게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부모님께 너무 큰 실망을 안겨드릴 것 같아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헤어지자고 해도 짐승처럼 울부짖고 매달리며 저를 옥죄던 그 아이는 ‘네가 어떤 아이인지 다 알리겠다’는 식의 협박도 자주했지만, 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죠. 결국 본인 마음이 떠났을 때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스물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저는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겁이 났어요. 대학 진학 후 동창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너한테 미안한 게 많다. 용서해 달라”며 사과했고, 저도 “알면 됐다” 하고 몇 대 쥐어박았습니다. 이제 친구들에게는 웃으면서 ‘그때 걔가 그랬다’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여전히 연애관계가 두렵습니다. 공포와 회피와 이별의 반복입니다. 스물 여섯에야 고교 이후 처음 사귀게 된 남자친구가 연락하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된 적이 있었어요. 섭섭한 마음에 내색을 좀 했더니 그가 인상을 쓰며 짜증을 내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배가 너무 아픈 거예요. 가슴이 쿵쾅거리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복통과 두통은 점점 심해지는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런 상황을 그저 피하고만 싶어서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고 했어요.

이후 제 연애는 회피로 점철돼 있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낼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제 속에 있는 말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쌓아두기만 합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기방어만 하다 보니 결국 제대로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이별하게 돼요.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괜찮은데, 연인관계에서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데이트폭력의 상처라는 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건가요?” (나지윤씨, 28세, 대학원생)

“사람들은 흔히 집착을 사랑으로 오해합니다. 얼마나 많이 사랑하면 저렇게 집착할까 생각하지만, 집착은 사랑이 아니에요. 데이트폭력이든, 의처증/의부증이든, 자녀에 대한 집착이든,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일방적 집착은 종종 폭력으로 나타나고, 당하는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에피소드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동일해요. 그럴 때 마음 깊은 곳에 불안이 자리잡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불안이 사랑의 대상을 향한 집착을 낳고, 집착은 자주 폭력으로 표현되며, 폭력은 트라우마를 유발합니다. 지윤씨에게는 그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거예요.

지윤씨, 얼마나 무서웠어요. 자라면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혼자서 감당했어야 했던 건데, 엄청난 충격과 공포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 남자친구가 불안이 높은 사람이었을 뿐, 지윤씨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지윤씨에 대한 그의 집착이 폭력으로 표현됐지만 그 본질은 불안이에요. 남자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 건드려질 때, 제대로 감정처리를 하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은 불안으로 인식되고, 불쾌해지고, 짜증과 신경질이 나고, 화나 분노로 폭발되는 거지요.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불안이 건드려지면, 그 불안이 자신이 해결해 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네가 나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며 상대 탓을 합니다. ‘나의 불안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말을 따라줘야만 진정돼’라며 끊임없이 상대에게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해요. 내가 불안할 때 그 불안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성장과 성숙을 통해 나 스스로가 진정시켜야지 상대에게 책임을 돌릴 수는 없어요. ‘내가 원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네가 따라줘야만 내가 안 불안해’는 틀린 겁니다. 이 요구들을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 내가 그 요구를 들어주면 편안해질 거라는 생각도 착각입니다.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불안의 주체는 절대로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없어요. 사상누각 같은 겁니다. 그의 불안은 그의 것이에요.

지금 지윤씨는 데이트폭력 자체보다 ‘그때 왜 나는 그 사건을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을까’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관계를 끝낸 건 그 남자의 결정과 방식이었고, 지윤씨에게는 성공적으로 관계정리와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내적 갈등이 트라우마로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았습니다. 그래서 약간만 비슷한 일이 반복돼도 그때 그 일이 생각나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어제 겪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미성숙했던 미성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그때 반응이 그대로 나오는 거죠.

지윤씨는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모범적이고 믿음직스런 딸이었어요. 흔히 손이 안 가는 아이라고 표현들 하죠. 그러니 부모님도 믿고 굳건한 신뢰에 기반해 자율성을 주셨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먹은 밥그릇 수는 어떻게 하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라도 나이가 어리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겁니다. 성장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니까요.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나친 자율성, 아직 어린 아이인데 완전히 믿고 맡겨버리는 것,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매사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사안은 늘 의논을 해야 합니다. 알아서 잘 하는 아이들도 혼자서 결정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부모가 자율성을 너무 빨리 지나치게 강조하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걸 독립적이지 못하고 무능하다고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거죠. ‘해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부모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다’ 하는 수치심이 들면서 도와달라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하는 하는 겁니다. 나의 결정과 방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될 것과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거지요. 부모는 “너를 믿어.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어려움을 겪어. 너처럼 경험이 많지 않은 나이에는 위기가 있게 마련이야. 그럴 땐 언제나 의논하자. 엄마 아빠한테 거리낌 없이 얘기해줘”라고 말해야 해요. “믿어”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부모에겐 부모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요. 아이가 갈등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인이 포착되면, 그때는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눠봐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지나가지 말고 한 단계 더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부모는 자녀를 키우면서 늘 두렵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두렵습니다. 내가 감당 못 하는 일들을 알게 될까 봐 두렵지만 용기를 내 한 발 더 들어가야 합니다.

부모가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자율을 주면 아이들이 잘 클 거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겐 꼭 채워져야 하는 의존적 욕구라는 게 있습니다. 독립적이냐, 의존적이냐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보호가 필요할 때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기본적, 생존적 욕구가 바로 의존적 욕구입니다. 이건 꼭 채워져야 해요.

자율성을 강조 받으면서 자랐지만, 지윤씨는 결과적으로 데이트폭력을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하게 됐어요. 혼자 해결하려고 지나치게 애썼지만 결국 소극적, 수동적이었고, 관계를 끝낸 건 통제권을 쥔 그 남자였죠. 때문에 지윤씨는 비록 안 좋은 경험이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 했을 거예요. 지윤씨에게는 데이트폭력 자체보다 뿌리가 단단하지 않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일 수 있어요. 그 단단하지 않은 뿌리가 건드려질 때 수치심과 자신의 결정과 해결방법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서 자신의 근간을 흔들 정도의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오면서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거죠. 데이트폭력만이 문제였다면, 그런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는 걸로,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는 걸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됐을 테니까요.

꼭 부모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 가까운 사람, 은사, 친구, 이젠 나이가 들어서 아랫사람이어도 상관 없어요.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 먼저 연습해 보세요. “나 남자친구가 생기면 너한테 꼭 보여줄게. 이상한 사람 아닌지 보고 네가 나 좀 꼭 도와줘. 나 모른 척하면 안 돼” 얘기해 보세요. “도와줘”, “나 어떻게 해야 해?” 청하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부모에게 이 얘기를 디테일하게 해보라고 권해주고 싶어요. “절대 원망하는 건 아니다. 나한테 생명을 준 두 분한테 꼭 얘기하고 싶었다. 그때 너무 공포스럽고 무서웠었다” 얘기하는 거예요. 분명히 두 분은 보듬어 주실 겁니다.

지윤씨, 당신은 문제의 50%를 이미 해결했어요. 신문을 통해서 드디어 ‘헬프’를 청한 거잖아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지윤씨만의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해결해 보는 수밖에 없어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죠. 하지만 도움 청하는 것을 시도한 것 자체가 지윤씨의 자율적 선택이잖아요. 도와달라는 말, 그건 못나서 하는 말도, 해서 부끄러운 말도 아니에요. 그걸 지윤씨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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