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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유산 ‘구산성당’ 하루아침에 뜯겨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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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주말처럼 기시감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다. 2008년 8월 25일 서울시민을 경악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서울시가 신청사 건립을 위해 태평홀 일부를 기습 철거한 것이다. 시민들은 반발했고, 문화재청이 훼손된 본관을 문화재로 ‘가지정’하면서 대책이 공론화되었다. 같은 일이 60년 역사를 지닌 경기 하남시 구산성당에서 일어났다.
지난 24일 오전 9시 주임신부와 건축위원회의 입회 하에 교회 상징인 첨탑이 철거되고 지붕이 뜯겨졌다. 이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를 받은 신자와 전문가들이 현장에 모였지만, 철거를 주도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원형보존을 반대하는 측의 폭거였다. 문제는 기습철거가 보존을 책임지겠다던 주임신부에 의해 주도되었고, 입장 변화에 대한 합리적 설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구산성당에서는 지난 19일 원형 보존을 다시 논의하자는 자리가 있었다. 주임신부와 건축위원회는 재정 문제와 기술 문제로 원형 이전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자 총회장은 이전 경비 3억8,500만원 중 3분의 2가 모금 시작 한 달이 안 돼 마련되었고, 이전이 마무리되기 전에 나머지도 가능하다고 합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오래된 벽돌건물이라 옮길 수 없다는 건축위원의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건축된 지 60년이 된 벽돌건축임에도 구조에 문제가 없었고, 문화재수리업체는 국내외 기술진의 검증을 받아 이전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실제로 17일에는 외국전문가의 현장조사와 자문도 있었다.
구산성당의 역사유산 가치는 주임신부와 건축위원회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위원회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원형 이전 포기 사과문이 발표되고, 대책 수립 중 기습 철거가 실시돼 신앙유산을 지키려는 신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근대유산 보존은 뜨거운 사회적 이슈 중 하나다.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근대유산은 식민 잔재라서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근대유산이 공동체의 기억과 교훈, 부모의 경험과 기억을 자식과 손자에게로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보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구산성당도 예외가 아니다. 구산성당은 김성우 성인의 생가 터라는 180년을 이어온 가톨릭 신앙공동체의 상징으로, 수원교구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 전체의 유산이다.
서울시청과 구산성당 사건은 매우 닮았다. 시청과 성당의 주인인 시민과 신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책임자가 철거를 단행했고, 기습 철거 후 사회적 반발이 거세다. 다행히 서울시청은 해법을 찾았다. 구산성당은 어떻게 될까. 성당의 원형보존에 관심 있는 수원교구장과 원로 신부, 신자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상황이 반전될 것을 기대해본다. 근대유산은 가치 형성 중인 유산이고, 가치 형성의 주체가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보존하지만 향유 주체는 후손이라는 점에서, 보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일부 훼손되었지만, 구산성당은 아직 원형이전이 가능한 상황이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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