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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대지진은 없다던 순진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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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각판이 달라 일본과 같은 강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던 생각은 얼마나 순진했는지. ‘대자연 앞에 인간은 미약하다’는 상투적 구문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 시기다. 도대체 한반도 땅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따지고 보면 한반도 지각판은 잘못이 없다. 양산단층이 어느 날 갑자기 환태평양조산대에 접하게 된 것도 아니거니와, 한반도 지반에 오래도록 누적된 에너지가 하필이면 이 때 양산단층의 움직임으로 해소된 것은 말 그대로 하필 이 때 일어난 일이다. 한반도에서 규모 6 이상의 강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간의 믿음이 잘못된 믿음일 뿐, 그러니까 사람들의 믿음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인식의 범위를 인간의 일생이 경험하는 100년 정도의 시간에 붙박아 두고 있었던 것이 문제다. 최대 규모라는 경주 5.8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최대일 뿐이다. 시야를 500년 정도로만 넓혀도 우리나라엔 이보다 큰 규모의 강진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규모 6 이상, 7에 가까운 대지진 발생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지질학자들은 한반도에 지진활동이 활발했던 17세기를 그 근거로 든다. 그 중에서도 1643년 7월 25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은 가장 규모가 큰 지진으로 꼽힌다. 세계적 자랑거리인 조선시대의 역사기록물은 이날 울산 대구 안동 김해 등에서 일어난 일을 “봉수대와 성첩이 많이 무너졌다”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다” “사람이 자리에 앉지 못하였고 산천이 끓어올랐다” “(울산 앞바다에서) 물이 끓어올랐다” “물이 샘처럼 솟은 자리에 흰 모래 1,2두가 나와 쌓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미 해양대기청(NOAA) 등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당시 지진 규모를 6.5~6.7 정도로 가늠한다. 이보다 한달 쯤 앞서 6월 9일 진주에서도 “땅이 10장이나 갈라지고 소나무 50~60그루가 부러지는” 규모 6.4(추정)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373년 전의 일이다. 이보다 1,000년 정도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에도 규모 6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들이 경주 지역에 수 차례 발생한 기록이 있다. 땅의 시간 단위는 고작 100년이 아니다. 30억년을 존재해 온 땅의 움직임은 최소한 1,000년의 시야로 바라봐야 한다.
땅의 시간으로 내다보면 대지진은 반드시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안전하다’는 그릇된 믿음은 이제 버려야 한다. 다만 언제가 될 것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지진의 발생을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포는 가중된다. 일본처럼 큰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예측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강진은 없다”고 장담하며 지진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강진에 대비가 안 돼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규모 6.0만 넘어가는 지진에도 피해가 심각하다”며 “정부부터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대비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선택의 길은 뻔해 보인다. 운 좋게 나의 일생 동안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지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낙관하며 마음 편히 인생을 즐길 것인지, 내 세대가 아니라면 자식 세대에 일어날 재앙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할 것인지.
또 다른 재앙은 100년, 1,000년은커녕 5년 앞을 내다보지 않는 정부라는 시스템일 것이다. 한여름 폭염재난문자는 시도 때도 없이 보내주던 국민안전처가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지진에는 먹통이 되고, 20~30년 투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다 갖추고 있다는 활성단층지도를 졸속 제작했다 폐기해 버린 그 정부 말이다.
김희원 사회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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