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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건물숲 속 잿빛 주택… 100년 관립 학교史 고스란히

입력
2016.09.18 21:22
역사와 젊음이 공존하는 동숭동 전경. 안창모 제공
역사와 젊음이 공존하는 동숭동 전경. 안창모 제공
동숭동 관사 전경. 안창모 제공
동숭동 관사 전경. 안창모 제공

동숭동은 서울 도심에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젊음에 취해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함께하는 색이 있다. 붉은 색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동숭동에는 붉은 벽돌로 연출되는 분위기가 있다. 서울대 법문학부가 동숭동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만 해도 동숭동의 분위기는 황갈색 타일의 대학건물이 분위기를 주도했었다. ‘서울의대 본관’과 ‘예술가의 집’이 아직도 황갈색 타일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울대의 관악 이전 이후 오늘의 동숭동 분위기는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바뀌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르코미술관과 예술극장, 샘터사옥 그리고 서울대 의학연구혁신센터(옛 해외개발공사)가 모두 김수근의 작품이다. 많은 근린생활시설과 주택들이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노출콘크리트와 붉은 녹을 특징으로 하는 내후성강판의 건축도 지어졌지만, 동숭동의 주인은 여전히 붉은 벽돌이다.

일제강점기 관학(官學)의 중심에서 해방 후 서울대 그리고 다시 소극장을 매개로 한 문화의 메카로 빠르게 변하면서, 마로니에공원 주변의 고급 단독주택들이 하나 둘 문화시설과 근린생활시설로 다시 지어졌다. 그런데 그 중에서 단독주택임에 틀림없지만, 전혀 고급스럽지 않은 주택이 한 채 옛 모습을 갖고 있다. 쇳대박물관(승효상 작) 건너편, 한국방송통신대 뒤편 모퉁이에 위치한 집이다.

서울 동숭동 쇳대박물관 앞에 위치한 마지막 관사. 안창모 제공
서울 동숭동 쇳대박물관 앞에 위치한 마지막 관사. 안창모 제공

자신의 컬러가 명확한 동숭동에서 낮은 콘크리트 블록 담장으로 둘러싸인 회색 빛 낡은 주택은 사람들의 시선 밖에 있지만, 이 건물에는 동숭동 관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숭동의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1916년 전문학교 관제가 실시된 이후다. 이때 관립의학, 공학, 법학전문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중에서 의학전문학교(현 서울의대)와 공업전문학교(현 서울공대)가 동숭동에 설립되었다. 1924년에는 경성제국대학도 세워졌다. 식민지하의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담당할 교수진은 대부분 일인으로 채워졌고, 그들에게는 예외 없이 관사가 제공되었다.

관사는 타지/타국 출신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에서 유효한 주거형식이자 전형적인 식민지배의 유산이다. 그래서 식민지기에 많은 관사들이 지어졌고, 동숭동의 마지막 관사도 전문학교에 근무할 일인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관사는 일인들이 이 땅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관사는 해방 직후 집 없는 교직원에게 제공되었다가 점차 민간에게 불하되었다. 그 관사 중 한 채만 남았다. 도심에 남아있기에는 말할 수 없이 초라해진 모습이지만, 이 관사에는 동숭동이 겪은 지난 100년 역사가 담겨 있다.

동숭동 관사의 창호. 안창모 제공
동숭동 관사의 창호. 안창모 제공

최근 이 집이 새 주인을 맞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동숭동을 잘 아는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고, 건축가는 비록 낡고 자랑할 역사를 지닌 집은 아니지만 아무렇지 않게 지워질 주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작지만 지역의 역사를 안고 있는 낡은 집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된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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