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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연구실의 ‘을’도 아닌 ‘병’... 절반이 “취업 위해 한국 떠날 것”

입력
2016.09.09 04:40

정규직-비정규직-계약직 연구원...

수직적 인력구조 맨 밑에 위치

실험 등 연구과정 감초 역할 불구

학생 이유로 대우 못받고 혹사

4대보험 없어 사고 나도 보상 無

1주 28시간 연수 규정도 유명무실

“나쁜 소문 나면 향후 경력 지장”

정규직이 업무 떠넘겨도 눈치만

정부는 20,30대 학생연수생(학연생)들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라고 치켜 세우고 있다.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의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연생들이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유는 정부출연연구원(출연연)을 비롯한 연구실의 수직적 인적 구성과 비뚤어진 권력 구조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한국일보와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동 조사를 통해 8일 처음 공개한 전국 출연연의 연구 인력 1만8,528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연구실 인력 구조의 꼭대기에는 9,737명(52.6%)의 정규직 연구원이 있다. 그 아래에는 비정규직 연구원 3,507명(18.9%), 박사 과정 후 연구원 등 계약직 연구원 1,255명(6.8%)이 있다. 4,028명(21.7%)의 학연생은 이들 3개 층위 아래의 가장 낮은 존재들이다.

갑을병(甲乙丙) 아래에 있다고 해서 ‘병 중의 병’이라 불리는 이들은 반복 실험을 통한 데이터 구하기, 연구 실험 준비, 뒷정리까지 전체 연구 과정의 대부분에 참가하고 있다. 핵심은 아닐지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감초’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학연생들이 없으면 연구실이 제대로 안 굴러간다”는 말이 정설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학생 신분이라 자신의 학위 과정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학연생 대부분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나 일반 대학원 소속의 학연협동과정 연수학생이다. UST 학연생들은 지도 교수가 출연연 연구진이라 다행이지만 일반 학연과정 학생들은 연구는 출연연에서, 강의는 소속 대학에서 챙기는 ‘두 집 살림’을 해야 한다.

문제는 학연생들이 정규직ㆍ비정규직ㆍ계약직 연구원과 함께 연구에 참여해 제 역할을 하지만 학생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다는 점이다. 근로자라면 누구나 보장 받는 4대 보험 혜택은 아예 없고, 급여ㆍ휴가 등에 대한 별도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학연생들은 1주일에 연구실에서 28시간 동안 연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이것이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다.

지난 3월 실험실 폭발사고로 손가락 2개를 잃은 한국화학연구원의 학연생 A씨는 출입 카드 확인 결과 1주일에 약 60시간을 실험실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학연생은 “과학기술계가 인맥이 좁다 보니 조금이라도 나쁜 소문이 돌면 취업이나 향후 경력 관리에 큰 지장을 받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정규직,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너의 연구 역량 개발을 위한 것’이라는 말로 추가 근무를 시켜도 따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산재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학연생들은 연구 중 부상을 입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장치가 없다. 문미옥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25개 출연연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 사고 32건 중 학연생이 피해를 입은 경우가 11건에 달했다. 실험 중 골절상을 입었던 한 학연생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복 실험을 도맡는데, 위험 화학 약품을 다루거나 절단의 위험이 있는 압축기 등을 자주 쓰다 보니 부상 위험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비슷한 도제식 수련과정을 밟는 병원 의사들의 경우 인턴과 레지던트 등 각 단계 별로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수련시간 주 당 최대 80시간 초과 금지’ 등을 담은 전공의특별법을 공포, 교육 과정에 있는 의사들의 노동 기본권을 명문화 했다. UST 측은 “학연생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학업과 연구를 병행할 수 있게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미래창조과학부나 상위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학연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해외로 향하고 있다. 생물학정보연구센터(BRICㆍ브릭)가 이달 초 이공계 박사 및 박사 졸업 예정자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년 내에 취업한다면 국내외 중 어느 곳을 우선으로 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7%가 ‘해외’를 택했다. 국내의 낮은 연구 인프라(42%)와 처우ㆍ대우(30%)가 그 이유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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