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항 파행에 졸지에 표류자 된 한진해운 선원들

입력
2016.09.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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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거부로 2일 만에 부산신항에 접안한 한진해운 소속 한진톈진호. 이 배는 하역을 마친 뒤 갈 곳이 없어 현재 공해상에서 대기 중이다. 부산=연합뉴스
작업 거부로 2일 만에 부산신항에 접안한 한진해운 소속 한진톈진호. 이 배는 하역을 마친 뒤 갈 곳이 없어 현재 공해상에서 대기 중이다. 부산=연합뉴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선박들에 대한 입항 거부 등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바다 위 선박에 갇혀 표류자 신세가 된 선원이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열악한 처지에 놓인 선원들의 건강과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5일 한진해운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입ㆍ출항과 작업 거부 등으로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는 선박은 73척(컨테이너선 66척, 벌크선 7척)으로 집계됐다. 컨테이너선은 전체 98척 중 70%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보통 컨테이너선에 승선하는 인원은 20명 안팎으로, 이들은 해상 정박 중에도 엔진을 돌리고 화물을 지켜야 한다. 원양 항해에 대비해 1~2주일치 정도의 식량을 예비로 비축하지만 입항 거부 등이 길어지면 식량과 식수가 바닥나고, 용량이 포화돼 화장실 사용조차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지난 1일 법정관리 개시 후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 접안한 한진톈진호 등 3척의 선박은 화물만 하역하고 부두를 떠난 뒤 갈 곳이 없어 현재 공해상에 대기 중이다. 다른 항만에서도 입항을 거부당할 수 있는데다 선박 압류를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최장 50일 가까이 배에서 생활한 선원들은 육지에 내리지 못한 채 다시 하염없이 배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앞으로 부산항에 돌아올 한진해운 선박들도 같은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항만에서도 선원들의 고충은 마찬가지다. 현재 공해상에서 떠도는 선박의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이미 수십 척 규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해운 직원 1,400여 명 중 육상직은 해외 주재원 100여명을 포함해도 700명이 안 된다. 나머지 790여명은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위에서 근무하는 해상직이다. 계약을 체결하고 승선하는 외국인 선원 숫자는 한진해운 직원들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해 상에 수십 척이 표류할 경우 고통 받을 선원이 수백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진해운이 도쿄법원에 신청한 압류중지명령(스테이 오더)이 이날 승인돼 일본에서는 선박 압류 등 강제집행 걱정 없이 운항이 가능해졌지만 7일(현지시간) 공청회가 열리는 미국을 비롯해 다른 국가에서는 여전히 강제집행 우려가 존재한다.

공해상의 선박에 최소한의 생필품을 공급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공급하려 해도 급유ㆍ급수선, 선용품(船用品ㆍ식료품과 연료 등 선박에서 상용되는 물품) 공급선 등은 규모가 작아 공해상에서 작업이 어렵다.

동료들이 열악한 상황에 놓이자 한진해운 노조는 이날 “선원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은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조속한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요한 한진해운 노조 위원장은 “한진해운의 소멸로 해운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엔 40년 넘게 쌓아온 노력이 너무나 아깝고, 최일선에서 고생한 선원들의 땀과 눈물이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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