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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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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8월 29일
1996년 7월 27일 밤,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미국 애틀랜타 센테니얼 올림픽공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심야 콘서트를 즐기던 행사장 수천여 관객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그 테러로 여성 한 명이 숨지고 110여 명이 부상 당했다. 카메라 기자 한 명도 숨졌는데, 그는 사고 현장을 취재하러 달려가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거였다.
인파가 몰린 공간의 폭탄 테러 치고는 희생자가 적었던 건 행사 임시 경비요원 리처드 주얼(Richard Jewell, 1962~2007) 덕이었다. 그는 객석에 버려져 있는 초록색 배낭을 발견, 예사롭지 않은 육감에 곧장 보안 부서에 연락했고, 폭발물 처리반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 주변 시민들을 대피시키려 노력했다. 그가 연락하고 13분 뒤 사제 폭발물이 터졌다.
사건 직후 언론은 그를 영웅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사흘 뒤 ‘애틀랜타 저널’은 FBI가 단독 테러범들의 범죄 프로파일 등에 근거, 그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경찰관이 되지 못한 그가 영웅이 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였다. 콘서트 무대보다 자신의 경비 업무를 중시했다는 점도 의심의 근거였다. FBI는 그의 집을 두 차례나 압수수색했고, 두 달여 동안 24시간 밀착 감시하는 등 수사를 벌였다. NBC, CNN 등 주요 언론들도 가세해 기소조차 되지 않은 그를 사실상 범인인 양 보도했고, 피해자 두 명은 주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악명 높은 폭파 테러범 ‘유나바머(Unabomber)’에 빗댄 별명인 ‘유나더퍼스(Unadoofus, doofus는 얼간이란 뜻)로 불리곤 했다.
진범이 밝혀진 건 2005년. 법원은 에릭 루돌프라는 반낙태ㆍ반동성애자 범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훗날 주얼은 당시의 경찰과 FBI, 언론을 두고 “피 흘리는 황소에게 덤벼드는 피라냐떼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얼간이 테러범으로 몬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대부분 보상 합의를 받아냈지만 첫 보도 매체인 애틀랜타저널의 본사 콕스 엔터프라이즈와는 재판까지 가서 패소했다. 당시 보도 내용이 사실이었으므로 명예훼손 행위가 아니었다는 게 2011년 조지아주 항소법원의 기각 이유였다. 심장병과 당뇨병을 앓던 그는 재판 결과를 보지 못하고 2007년 8월 29일, 44세로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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