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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X세리머니’ 릴레사 돕기 후원 밀물

입력
2016.08.2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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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크라우드펀딩 4만弗 모금

은메달은 박탈 가능성 높아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26)가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서 두 팔을 엇갈려 'X'를 그려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26)가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서 두 팔을 엇갈려 'X'를 그려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반정부 메시지를 전한 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페이사 릴레사(26ㆍ에티오피아)에 대한 전세계의 후원 문의가 밀물을 이루고 있다. 모금 창구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com)’로 릴레사가 경기를 마친 지 몇 시간 만에 개설됐다. 현재 목표는 10만달러로 설정됐는데 거의 1분에 한두 건씩 10달러부터 다양한 액수의 후원금이 쏟아지고 있다. 23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인 자금은 8만3,000달러(약 9,26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도 이날 릴레사를 돕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개설되자마자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4만달러(약 4,500만원)가 모였다”고 보도했다.

릴레사는 지난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출발해 구하나바하 베이 해변도로를 돌아 다시 삼보드로무로 골인하는 남자 마라톤에서 2시간9분54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릴레사는 은메달보다 비장한 세리머니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 두 팔을 엇갈려 ‘X’자를 그렸다. 에티오피아 정부를 향한 비판 메시지를 담은 행동이었다. 시상식에서도 릴레사는 다시 한번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경기 후 릴레사는 “에티오피아 정부는 우리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 나는 오로미아인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지지한다”고 ‘X’의 의미를 설명했다. DPA통신은 “릴레사는 올림픽 무대를 ‘에티오피아의 상황’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제 에티오피아는 오로미아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을 숨지게 해 거센 비난여론을 받고 있다. 오로미아 출신인 릴레사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하는 의미다. 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는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릴레사는 “이제 나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에티오피아에 가면 죽거나 수감될 것”이라면서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릴레사의 사연이 알려지자 그의 망명을 돕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인터넷을 통해 개설됐다.

에티오피아 국영 방송은 릴레사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삭제하고, 이 경기를 방영할 정도였다.

한편 에티오피아 정부 대변인 게타츄 레다는 23일 라디오 방송 파나와의 인터뷰에서 “릴레사는 에티오피아의 영웅”이라면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어떤 문제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릴레사의 은메달은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에서 정치, 종교, 상업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육상 200m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에서 검정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리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다 메달을 박탈당했다. 또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남자축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 대표팀의 박종우가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IOC의 조사를 받았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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