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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 매번 전전긍긍한다면 둔감력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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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걱정거리가 범람한다. 거리에서 예측불가의 폭주차량이 날아들고, 검열되지 않은 독성물질들이 이웃의 삶을 할퀴고 지나간다. 갑을ㆍ세대ㆍ성별 간 전쟁으로 쏟아지는 분노에 직장 괴롭힘 등으로 인한 감정노동까지. 고민과 경계의 끈을 놓는 순간 존재와 안녕이 위태로울 것만 같은 불안감에 모두가 예민한 촉수를 곤두세우는 시절이다.
문제는 매사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경계하고 반추하도록 설계된 이 사고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일상이나 평범한 인간관계에서까지 시도 때도 없이 근심을 과잉작동하기 십상이란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괴롭히는 삶을 반복하게 된다. 실제 위험과 문제를 직면하기도 전에 기진맥진해 상황을 헤쳐나갈 동력을 잃는 것도 문제다. 램프증후군(Lamp syndrome)은 이런 현상을 이른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 수시로 끌어올려 살피고 근심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증상이다.
예민함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일본 심리 상담가로 ‘고민도 버릇이다’를 펴낸 스기타 다카시는 사소한 일로 끙끙 앓는다거나 불완전함에 대한 강박으로 늘 불안하다면 “당신이 올바르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안 그래도 걱정할 게 많은 세상, 소모적인 고민만이라도 줄여나갈 방법은 없을까. 걱정할 가치가 있는 일만 염려하고 한정된 집중력을 내게 꼭 필요한 일에만 쓰는 연습이 필요한 시간이다.
평생을 예민한 성격으로 살아온 회사원 A(53)씨는 지난해 자율신경실조증 진단을 받은 뒤 깊은 회의에 빠졌다. 늘 완벽을 기하고, 실수하거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모든 관계에 예를 갖추며 살아온 탓에 비교적 무난한, 내지는 성공에 가까운 궤도를 밟았다고 생각해온 터였다. 하지만 이 극도의 예민함이 단순한 성격이나 업무 내용 탓이 아니라 신체 이상의 원인 혹은 결과 일 수 있다는 설명을 듣게 된 것. 그는 “세상의 기준에 비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작 중요한 제 심신을 망가뜨리고 학대해온 것은 아닌가 싶어 서글펐다”고 말했다.
주부 B씨는 최근 자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글 한 토막을 돌이켜 생각하며 밤잠을 설쳤다. 친구가 올린 “부자가 되고 싶어 죽겠는데 아닌 척 하는 것들 정말 웃긴다”는 글에 “혹시 난가” 싶어 괜히 장황한 심경을 토로한 일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겨냥한 타깃이 정말 B씨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요즘 이런 사람을 ‘예민보스’나 ‘예민충’이라고까지 한다는데 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온갖 생각의 꼬리를 멈추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도 필요
남보다 유독 더 민감한 사람들인 ‘HSP’(Highly Sensitive Person)를 연구해 온 미국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자신의 홈페이지와 여러 저서에서 “예민한 이들에게는 대체로 ‘숫기가 없다’, ‘소심하다’, ‘신경질적이다’라는 부정적 꼬리표가 따르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민감성은 있고 15~20%의 사람은 선천적으로 남보다 민감하게 태어난다”며 “잘만 활용한다면 이 민감성은 단점이라기보다 장점”이라고 말한다. 피카소, 헤밍웨이 등도 남보다 특히 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기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필요할 정도로 자주 수치심에 시달릴 경우 자존감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스트레스를 늘 적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일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실낙원’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일본의 의사 출신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2007년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기질을 ‘둔감력(鈍感力)’으로 정의하고 ‘둔감력’(형실Life)이라는 책까지 내놨다. 그는 한 동료 문인을 거론하며, 유능했지만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으로 상처받기 일쑤라 중앙 문단에서 결국 사라져버린 그를 생각하면 “둔감력이라는 어휘에 생각이 미친다”고 했다.
곰 같이 무신경하고 무례한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라 대응하기 어려운 상대방의 온갖 버릇과 태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자는 취지다. 그는 수술 중 습관적으로 의미 없는 잔소리를 해대는 한 대학병원의 주임교수와 그 제자들의 반응을 예로 든다. 자신의 경험담이다. 사소한 야단에도 손끝을 바들바들 떨고, 얼굴색이 변하고, 홧김에 일과 후 술을 퍼붓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S 선배는 “예, 예”하고 박자를 맞추듯 반복해 답하곤 기분 좋게 제 일에 집중했다. 제자들이 교수의 ‘만행’을 어딘가에 고발해 그를 내쫓을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상 그 선배의 대응이 생산적인 것은 당연지사다.
비극 대본 작성을 멈춰라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를 외치는 세간의 심리를 반영한 걸까. 수년 새 서점가에 이런 상황에 대한 처방전을 담은 온갖 종류의 ‘무반응’ 훈련서가 즐비하다. 각종 제안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첫 번째 작은 습관은 꼬리를 무는 쓸데없는 반응을 끊기 위해 신경을 감정, 뇌리에서 몸의 감각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얀마, 태국 등에서 수행 후 저서 ‘반응하지 않는 연습’(위즈덤하우스)으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승려 구사나기 류순은 “의식이 감정으로 잠식되려고 할 때, 걷거나 먹거나 호흡하는 등 몸의 감각을 활성화하면 마음이 특정한 반응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 줄어든다”고 조언한다. 30초 간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하거나,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끼얹어 의식을 환기한다.
독일 명상 전문가 요하네스 라우터바흐가 ‘잠깐이면 돼’(비즈페이퍼)에서 권하는 ‘(질주하는)사고에 저속 페달을 밟는 법’도 이와 유사하다. 발의 감각을 느끼며 걷거나, 들리는 소리, 보이는 풍경에 집중하거나, 의식적으로 호흡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손의 촉각을 단련하는 등의 행동으로 “머리 속에 상영되는 비극적 시나리오의 영화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처방은 뇌리에서 생각의 사슬이 이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분노, 억울함, 수치, 짜증 등으로 라벨링을 시도하고 그 비율을 계산해 보거나 떠오르는 생각 중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추려 기록하는 연습을 통해 서랍을 정리하듯 감정을 분류하면 된다.
세 번째 처방은 ‘나만 옳다’거나 ‘내 정당성을 이해 받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훈련이다. 류순은 “가장 좋은 것은 이해해주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건 상대방의 영역”이라는 전제가 과잉사고(over-thinking)를 끊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조언한다. 마찬가지로 일본 승려 나토리 호겐(‘신경 쓰지 않는 연습’) 역시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다는 자만이 필사적인 노력과 스트레스 상태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그 밖에도 ▦무리하게 흑백, 승패를 나눠 생각하지 않기 ▦귀여운 반려동물을 만지거나 그 모습에 공감하기 ▦산책 등을 통한 활기 충전 ▦멀티태스킹을 멈추고 하나씩 해결하기 ▦화려한 색의 스티커를 붙여두고 잠시 생각 릴레이 멈춰보기 등도 도움이 된다.
일레인 아론에 따르면 민감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빨리 알아채고 심사숙고 하는 만큼 직관적이고 영리하고 배려할 줄 알고 양심적인 경향이 강할 수 있지만,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다 문득 희망을 잃기도 한다. 늘 더 고민하는 사람은 더 안전해질 수 있고 더 발전할 테고 더 친절할 수 있지만 그럴 에너지가 내게 충분한지 가끔 돌아봐야 할 이유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성비를 외치는 시대에 마음 씀씀이에도 절약이 필요하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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