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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ㆍ분노 이기려면 “감탄하고 집중하라”

입력
2016.07.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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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극단적 무기력과 분노가 거듭될 수록 나와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고수해야 이 무력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에리히 프롬 재단
에리히 프롬은 "극단적 무기력과 분노가 거듭될 수록 나와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고수해야 이 무력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에리히 프롬 재단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ㆍ라이너 풍크 엮음ㆍ장혜경 옮김

나무생각 발행ㆍ208쪽ㆍ1만3,000원

도처에서 발작적인 분노가 복받친다. 기묘하게도 이 노여움들은 폭발 직전까지 태연한 무기력의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는 무엇이 집단적 무기력과 나아가 분노, 공포를 유발하는지를 조목조목 풀어헤치는 책이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의 개척자인 에리히 프롬이 1930년대부터 쓴 강연록, 논문, 저서 등을 모았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책의 4, 5장에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일부 내용이 발췌돼 있다. 프롬의 마지막 조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라이너 풍크가 엮었고 영어권에서 2000년, 독어권에서 2006년 각각 출간됐다.

무려 80년의 시차를 두고 도래한 분석치고는 프롬이 지적하는 자기착취 메커니즘이 지극히 동시대적이다. 그를 찬탄해야 마땅할까, 그의 시대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현실을 개탄해야 좋을까. 프롬은 20세기를 마주한 인류가 물리적 권위주의와 야만적 착취 등 19세기의 악덕들을 상당 부분 털어냈지만, 그 자리를 자기착취라는 익명의 권위에 고스란히 내주었다고 지적한다.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지닌 물질세계의 주인이면서도 점점 더 기계처럼 행동하며, 그 어느 때 보다 남과 같아지려 한다는 것이다. 프롬은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은 바로 자발성을 경험할 때로 보는데, 타인의 기준, 공동체의 기준에 천착하다 보니 남은 것은 “지루하고 무미건조하며 우울하고 공허하고 아무 의욕이 없는” 무기력뿐이다.

여러 논고에서 자유, 평등, 본성, 자발성, 분노, 공포 등의 추상적 개념을 넘나드는 그의 분석은 시종일관 집요하지만, 대중지식인의 아이콘답게 쉽게 풀어 쓴 글이라 무겁지 않다. 군데군데 자신의 임상 경험도 녹였다.

프롬이 이토록 무기력에 천착한 이유는 ‘네가 원하는 나’만을 향해 자기착취의 페달을 굴리는 현대인의 무기력이 결국 분노와 공포, 신경증, 과대망상 나아가 역사의 정체를 빚어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무기력을 탈피해 ‘진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선 ▦감탄의 능력 ▦과거,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몰입할 줄 아는 집중력 ▦회피하지 않고 갈등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회복하자는 그의 권유는 2016년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들린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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