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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 칼럼] 진경준을 통해 한국사회 읽기

입력
2016.07.24 14:00
넥슨 주식 시세차익 등 자산증식 의혹을 받고 있는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넥슨 주식 시세차익 등 자산증식 의혹을 받고 있는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한국사회가 최근 진경준, 홍만표, 우병우 사건 등 잇따른 법조계 비리로 떠들썩하다. 물론 개탄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탄에 앞서 이 사건들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진경준 검사의 성인 이후의 삶을 보자. 그는 21세 사법고시 22세 행정고시 합격한 소위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사회정의, 법 앞의 평등 등에 대해 수없이 들어 왔을 것이다. 그가 29세 젊은 검사 시절 열차 암표장사가 정상가격보다 4,000원을 더 받았다고 하여 구속처리 한 데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당시 진 검사는 여름 한 철 많은 사람이 표를 구하려 하는 데 이를 이용한 반 사회적 범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한다.

이렇게 정의감에 넘치던 진 검사는 20여년이 흐르며 변신하게 된다. 검찰과 법무부의 요직을 거쳐 검사장에 이르면서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 것이다. 공적 자리에서는 존 롤스의 ‘사회정의론’을 인용하면서 공동체 사회에 기반을 둔 사회정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그러나 이런 공적 가면 뒤에 숨겨진 진 검사의 얼굴은 수많은 불법적 행위에 물들어 있었고 이런 불법적 행위를 대학 동기라는 끈끈한 인연을 통해 깊숙이 감추었다.

인치불일치론이라는 심리학 이론은 인간은 자신의 행위 유형 간에 심각한 불일치가 있으면 이를 교정하려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라고 한다.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불법적 내부자 거래를 일삼은 진 검사는 과연 인지불일치를 느꼈을까. 대학 동기를 통해 행해진 불법에 대해 그는 커다란 인지불일치를 느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학연 뒤에 숨어 두 얼굴로 사는 것에 대해 큰 갈등을 느끼지 않고 익숙했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감싸면서 그의 권력을 함께 향유하는 사람들로 형성된 촘촘한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 경준 검사의 범법행위 자체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한국사회에서 진 경준 검사현상이 그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일까.

한국사회 구조의 특징으로 보아 진 검사가 예외적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근대적 가치와 제도가 정착되기보다는 그 반대로 전통적 제도와 가치가 강화된 특징을 보인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는 사실이 정신과 제도 가치가 과거로부터 단절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연 혈연 지연이 더욱 강화된 사회에서 대학 졸업생들은 졸업 후 취직을 하자마자 학교에서 배운 도덕적 가치와 규범이 실제 사회에서 무참하게 무시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소위 출세는 이러한 연결망에 얼마나 넓고 깊게 연계되느냐에 달려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전통적 관계망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국가가 자의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시장제도의 강화에 따라 연줄과 인맥의 영향은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시장제도가 초래한 불확실성의 증대가 오히려 연줄에 대한 의존도를 강화했다. 또 권력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현상도 빈번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연줄 동원은 시장원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나, 검찰 법원 관료 사회와 같이 밖으로부터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분야에서는 구태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공권력이 시장을 왜곡하는 현상이 만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시에 5년마다 대선을 거치며 정치권력이 이동하고 격동하는 국제시장의 영향은 과거와 같이 정경밀착을 오랫동안 은폐하기 어렵게 한다. 최근 수년간 검찰 비리가 빈발하는 것은 경악할 일이지만, 동시에 해묵은 음습한 병폐가 노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자주 터지는 이런 부정부패 사례는 민주주의와 시장화가 더욱더 활성화하고 진전되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81년의 설문조사에서 ‘한국사회에 학연과 지연이 필요한가’에 대해 71%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는데, 2011년이 되어서 이 응답 비율이 85%로 오히려 높아졌다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학연과 지연을 실제 이용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한국사회의 이러한 흐름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자유스러운지 자문해 볼 일이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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