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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쿠데타 때 몇분 차로 목숨 건졌다

입력
2016.07.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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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했던 터키 반란군

“우리는 오늘 죽을 수 있다”

총리 소집한 회의서 장관들 술렁

전투기 동원해 대통령 추격도

15일 터키 시민들이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쿠데타에 저항하며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15일 터키 시민들이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쿠데타에 저항하며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터키 주요 장관 9명은 15일(현지시간) 오후 11시쯤 터키 쿠데타 반군이 국영 TRT방송을 점거하고 “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선포하는 장면을 한 자리에 모여 TV로 지켜봤다. 앙카라의 총리 관저에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회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렸고, 탱크가 앙카라와 이스탄불 거리를 점령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쿠데타가 성공한 것 같다. 우리는 오늘 죽을 수 있다”는 대화가 오갔다.

터기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허술한 쿠데타였다는 초기 평가와 달리 치밀하게 계획된 반란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8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에르도안 대통령도 살해 위협을 가까스로 넘겼다”며 “쿠데타는 거의 성공할 뻔 했다”고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불과 몇 분 차이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군 25명은 16일 새벽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던 터키 남부 마르마리스의 호텔을 급습했다. 대통령이 쿠데타 소식을 듣고 자리를 뜬 지 약 15분 만이었다. 호텔을 지키던 경호원 두 명이 반란군과 대치하다 사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조금만 늦었어도 죽거나 체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계속됐다. 반란군 소속 F-16전투기 두 대가 대통령이 탄 비행기에 따라붙었다. 이 사실은 쿠데타 당시 로이터 통신 등을 통해 알려지며 “반군이 왜 비행기를 쏘지 않았는지 미스터리”라는 의문을 증폭시켰다. 정부 관계자는 “비행기의 조종사가 무전기로 ‘우리는 터키항공 소속 민간 여객기’라고 둘러대 위기를 모면했다”고 설명했다.

에프칸 알라 내무부 장관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쿠데타 당일 군사령부의 최고위급 안보회의에 초대 됐지만 바쁜 일정이 생겨 회의에 불참했다. 회의에 참석한 이슬람국가(IS) 대테러 책임자는 쿠데타 후 시신으로 발견됐다. 반군이 고위 관료들을 붙잡기 위해 회의라는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라 장관은 천운으로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정부청사와 의회 등 주요 시설이 모두 쿠데타군의 공격을 받은 가운데 경찰청사가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군의 헬리콥터가 청사를 향해 기관포를 난사해 경찰 17명이 즉사했다. 청사에 있던 무라트 카라쿨루쿠 경관은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며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생각하다 정신을 차리고 대응 사격을 했다. (중화기가 없어) 휴대용 무기로 공격했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털어놨다.

16일 0시 37분 에르도안이 CNN투르크와 아이폰의 화상전화 서비스인 ‘페이스타임’으로 인터뷰해 건재함을 알리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의회 안에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장관들도 흥분했다. 스마트폰에 능숙하지 못한 한 장관은 “페이스타임이 뭐냐. 왜 나는 가지고 있지 않냐”고 허둥댔다. 비날리 이을드롬 총리의 참모 세말레틴 하쉬미는 “대통령의 성명으로 정신을 차리게 됐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들도 쿠데타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설파했고, 군부 대부분과 야당마저 반군을 비난했다. 하쉬미는 “쿠데타는 매우 잘 계획됐고 거의 성공할 뻔 했다”며 “대통령의 기지와 시민의 저항 등 반군이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며 쿠데타가 좌절됐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쿠데타 진압에는 운도 따랐다”고 평가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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