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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민 갔다, 아이랑 딱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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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김모(34)씨는 여섯 살 아들과 올 6월 한 달간 제주도에서 살았다. 남편은 홀로 집에 남겨두고 두 모자만 감행한 ‘단기 제주 이민’이었다. 김씨는 그 흔한 육아휴직 한번 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온 열혈 워킹맘. 하지만 요 몇 년 새 유행하고 있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앞에선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처음으로 휴직계를 내고 자가용에 짐을 실은 채 제주행 배에 올라탔다.
엄마랑 아이랑 제주도에서 한 달
“항상 질주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멈추면 안 될 것 같아 애 낳고도 쉴 생각을 못했죠. 그러다 문득, 지금이 아니면 아이랑 함께 보낼 시간이 없겠다 싶더라고요. 저에겐 삶의 여유가, 아이에게는 좋은 추억이, 우리 둘 모두에게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어요.” 홀로 집에 남아 회사에 다녀야 하는 남편은 흔쾌히 모자의 제주살이에 동의했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였다. 그리움이야 제주살이의 시작과 끝에 휴가를 내고 합류하면 그만이었다.
단기 제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숙소 예약. 제주 한 달 살기가 크게 유행하면서 방학 시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아니면 예약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방학이 아닌 때에도 6개월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초창기 제주 신시가지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한 달 살기는 관광지 펜션들의 비성수기 운영 대책으로 변용됐다가 지금은 아예 한 달씩만 임대를 받는 전문숙소 위주로 운영될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다. 김씨가 한 달 간 묵은 곳은 제주 애월읍 곽지리에 있는 제주의 첫 한 달 살기 전용 숙소 ‘레이지 마마’. 아이가 한 달간 유치원을 빠져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체험학습 보고서를 내기로 하고 5월 25일부터 6월 22일까지 이곳에 묵었다. 비용은 총 400만~450만원 정도 들었다. 한 달 살기 전용으로 운영되는 숙소들은 보통 원룸 월 100만원, 단독 별채는 월 200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받는다.
“아이랑 저랑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놀기만 했던 1주일이 가장 잊혀지지 않아요. 관광지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그 1주일이 너무 좋았어요.” 아이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아침이면 늘 억지로 깨워 억지로 먹이고 입혀야 했던 도시에서의 삶과 달리 아이는 스스로 눈을 떠서 스스로 먹고 입는 자기주도적 삶을 살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나가 놀고 싶어서였다. “수줍음 많던 아이가 자신감도 넘치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변했어요. 주변에서 다들 야물어졌다고 평가하시더라고요. 아이가 지금도 제주 이야기를 할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죠.” 김씨는 “제주에서 보낸 한 달 덕분에 ‘때로는 멈춰도 괜찮구나’를 배웠다”며 “주변에 제주 한 달 살기를 강력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과 살기 사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초창기 제주에 한 달씩 살러 내려오는 사람들은 이미 여행을 많이 다녀본, 아이들 교육에 대한 철학이 남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전업주부인 엄마가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저학년 자녀들을 데리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내려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훨씬 대중화돼 다양한 유형의 부모와 자녀들이 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하러 내려온다. 곧 출간되는 ‘아이랑 제주 한 달’(라이스메이커 발행)을 쓴 이연희 레이지마마 대표는 “요즘에는 제주도 이주에 관심 있는 분들이 진지하게 사전답사의 의미로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의 매력은 여행과 살기의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3박4일 여행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감각의 쾌락과 도시의 일상에서는 추구하기 어려운 느리게 살기가 이 곳에서는 동시에 가능하다. 처음으로 제주 한 달 살이에 관한 책(‘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북하우스 발행)을 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전은주씨는 삼다도 제주를 컴퓨터와 텔레비전과 장난감이 없는 ‘삼무도’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엄마들은 존재를 짓누르는 살림과 매니저맘의 의무로부터, 아이들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학원 뺑뺑이와 공부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것. 굳이 300만~400만원의 비용을 들여 제주도까지 살러 내려가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다.
이연희 레이지마마 대표는 “학원 다니느라 너무 지친 아이, 학원 보내느라 너무 지친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러 많이 온다”며 “굳이 스케줄 짜서 어디 가기보다는 마당 있는 집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 달을 살다 보면 내가 너무 아등바등 살았구나, 아이들 닦달하며 살아온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죠. 그렇게 자기 삶에 안식월을 가지면서 뭐가 잘못됐었는지 성찰하고, 변화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
물론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다. 즐겁기보다 화가 나고, 여유롭기보다 복장이 터지는 이유를 곰곰 따져보면 거기엔 대부분 지켜지지 못할, 지켜져야 할 필요도 없는 과중한 계획표가 있다. 첫 날은 협재 바닷가에 가고, 둘째 날은 한라산을 정복하며, 셋째 날은 성산 일출봉에 올라야 한다면, 제주 한 달 살기는 이미 실패를 예정한 것이기 십상이다. “제주에 오는 목적을 뚜렷이 해야 해요. 이것저것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고 오면, 명소와 맛집이 빼곡히 적힌 리스트만 들고 발을 동동거리다 끝나게 되죠. 한 달 살기의 의미가 없어요.” 이연희 대표는 “정보 수집을 너무 많이 해온 엄마들이 애들을 닦달하면서 ‘늦었어, 빨리 해’를 입에 달고 지내는 경향이 있다”며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인 게 제주 한 달 살기”라고 말했다.
아이가 아토피가 있다면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실컷 흙 만지며 생활할 수 있게 마당 있는 집을 빌려 오름이나 슬슬 다니는 게 좋고, 엄마나 아이가 식습관을 바꾸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유명 관광지보다는 올레길이나 오름 등 숲길을 많이 걷는 도보여행이 좋다. “사실 아이들은 어디 가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걸 가장 좋아해요. 마당에서 공벌레 잡으며 깔깔대고 노는 게 애들한테는 제일 재미있는 거죠. 서울에서는 체험전이나 놀이공원처럼 엄마가 돈을 내고 프로그램을 짜야 놀 수 있는 데 반해 여기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잘 놀거든요. 그걸 보면서 많은 엄마들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구나 깨닫게 되죠.”
치밀한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불안한 엄마일수록 짐도 방대하다. 선풍기에 청소기, 미니오븐에 그늘막 텐트까지, 이삿짐 수준으로 들고 내려오는 엄마들도 많다. 하지만 많은 경험자들이 짐을 최소화할 것을 권한다. 옷 몇 벌에 수영복, 수건, 얇은 이불, 각종 양념과 먹거리 정도면 족하다. 세제나 휴지 같은 소모품은 현지에서 사면 된다. 요리에 너무 전념할 필요도 없다. 아이를 키운 팔할은 언제나 김과 계란 아니었던가. 아침은 간단히 해먹고, 점심은 도시락 싸먹고, 저녁은 저렴한 현지식을 사먹으면 그만이다. “짐이 많으면 삶이 무거워져요. 엄마 혼자 다 들고 다니지도 못하고요. 제주도에서 느리게 살고, 가볍게 살고, 여유롭게 살기 위해 한 달간 오는 건데 짐이 많으면 안 되죠.” 이연희 대표는 “정보도, 짐도 최소화하라”며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는 것이 완벽한 준비”라고 강조했다.
수영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책 읽고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러 내려오는 아이들은 방학이 아닌 때는 5~7세 유치원 아동, 방학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의 저학년 아동이 대부분이다. 학기 중 내려오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아예 맘 편히 학교를 빠지고 오거나 아니면 한 달 간 전학을 시켜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교환학생과 유사한 위탁교육제도를 활용해 전학하지 않고 제주의 학교를 다닐 수도 있지만,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이제는 단기 위탁교육은 받지 않는 학교들이 많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학사관리와 행정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유치원을 일시적이나마 작파하고 내려온 제주도에서, 가장 각광 받는 액티비티는 그래서 독서다. 학원 끊기가 제주 단기 이민의 중대 미션 중 하나지만, 책마저 끊기에는 엄마의 마음의 많이 불안하다. 짐의 상당 부분이 그래서 아이들의 책이다. 독서도 하나의 억압으로 보느냐, 독서는 언제 어디서나 해야 하는 삶의 필수로 보느냐에 따라 입장은 갈린다. 하지만 후자라면 바리바리 책을 싸 들고 오는 것보다는 주민등록을 옮겨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15일 이상 체류하면 합법적으로 주소지 등록이 가능하다.
방학을 이용할 수 없다면 어느 시기를 택할 것인지는 숙소 선택만큼이나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다. 여름은 성수기를 피해 6월과 8월 중순 이후부터 9월까지가 좋다. 7, 8월은 너무 덥고 자외선이 강해서 오히려 낮에 많이 못 움직인다. 도시사람들이 가장 예민한 벌레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때이기도 하다.
제주는 사계절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 언제 와서 지내도 좋다. 이연희 대표는 “봄에는 꽃들이 너무 예쁘고, 아이들과 많이 걷기 가장 좋은 때”라고 말했다. 고사리가 많이 나서 꺾으러 다니는 재미가 좋을 뿐 아니라 산나물을 채취하거나 밭 지천에 수확하고 남은 당근, 무 같은 걸 ‘이삭 줍기’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름은 제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좋은 바다들 덕분에 어디 서도 붐비지 않게 물놀이를 할 수 있어 좋고, 가을에는 제주마축제, 해녀축제 등 각종 문화행사가 많아 신난다. 동네 어슬렁거리며 다니기 좋은 산책의 계절이 가을이다. “겨울은 해산물이 너무 좋죠. 회와 해산물 같은 신선한 먹거리가 겨울에 풍부해요. 또 제주 아이들에겐 한라산이 눈썰매장이에요. 곳곳에서 눈 축제가 벌어지고 천연 눈썰매장에서 온종일 눈썰매를 탈 수 있죠.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게 눈꽃산행이에요. 설산을 함께 오르다 보면 아이나 엄마나 잊지 못할 인생의 명장면을 만들게 되거든요.”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너나없이 부러워하는 삶의 로망이 되면서 잦은 친지, 손님 방문으로 빈둥거리며 사는 삶을 망치는 사람들도 많다. 한 달 내내 관광지와 맛집을 순회하며 손님치레만 하다 끝내고 싶지 않다면 단호한 거절, 그것이 어렵다면 비밀 엄수가 필요하다. 경비를 아끼겠다고 숙소 하나를 두 집이 나눠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 또한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이와 엄마가 ‘온전한 우리만의 시간’을 느리게 보내기 위해 떠나는 짧은 이민, 그것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이기 때문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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