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사진발’에 속지 말아야 할 중남미 여행지 4선

입력
2016.07.07 14:00

여자들의 화장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 세상에 있었으니, 바로 여행지의 '사진발'이다. 마음으로는 수 차례 짐을 쌌건만 떠나지 못할 사정이 수만 가지다. 머나먼 중남미가 여행지라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사진은 여행의 기폭제이자 깊은 위안이다. 떠나지 못한 영혼에 ‘언젠가’란 꿈을 꾸게 하고, 당장 건조한 삶에 영양 크림을 바르는 게 여행 사진이다. 문제는 ‘사진발’의 함정이다. 직접 보니, 다시 가고 싶냐는 의문 앞에 망설여지는 중남미의 인기 여행지 4선. 그를 대체할만한 여행지까지 애프터서비스한다.

①페루 후아카치나(Huacachina)

여행자는 이 한 컷에 모든 걸 걸고 후아카치나로 향한다.
여행자는 이 한 컷에 모든 걸 걸고 후아카치나로 향한다.
뙤약볕에서 샌드보딩을 즐기려다가 실신 직전인 청춘.
뙤약볕에서 샌드보딩을 즐기려다가 실신 직전인 청춘.
버기의 무지막지한 출현으로 마을 가까이에선 바람이 그린 모래결에 감읍하기 어렵다. 쓰레기 출현도 동시에.
버기의 무지막지한 출현으로 마을 가까이에선 바람이 그린 모래결에 감읍하기 어렵다. 쓰레기 출현도 동시에.
‘선녀와 나무꾼’ 수준의 전설이 있는 호수. 목욕 장면을 들킨 공주가 인어가 되었다는 이곳엔 보트가 산고 있다.
‘선녀와 나무꾼’ 수준의 전설이 있는 호수. 목욕 장면을 들킨 공주가 인어가 되었다는 이곳엔 보트가 산고 있다.

사진만큼 별명이 으리으리하다. '사막의 오아시스'란다. 사막 한 가운데 숨어 목마른 여행자의 환희로까지 대변되는 이곳까진, 사실 탐험가조차 걷지 않는다. 이카 터미널에서 택시 기사와 흥정하거나 돈독 오른 투어 셔틀버스를 이용해 진입한다. 모래를 밟자 발이 ‘달고나’처럼 녹는 듯했다. 무릎 경련을 일으키는 모래언덕을 미련하게 올랐다. 찰칵! 기존에 봤던 그 사진이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10분이면 돌아보는 마을의 영혼은 호수 속에 잠들었고, 사막엔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버기(모래를 활주하는 특수 지프)의 괴성만 울렸다. 에어컨 바람 쐬며 죽기 전에 가고 싶다고 갈망하던 때가 더 행복했잖아! 사막이 온당히 가져야 할, 그 침묵할 수밖에 없는 신비에 우매한 갈증이 났다.

▶추천 대체 여행지 : 브라질의 렌소이스 마라냔세스 국립공원(Lencois Maranhenses)

사막이 품은 태초의 신비에 발끝이 간지러운 곳. 아마존 분지의 바로 곁에서 매년 초 내리는 비에 따라 자생적으로 호수를 이루는 물과 모래와 생물의 정원이다.

뽀얀 모래와 고운 호수 모두 바람이 만든 결의 리듬으로 춤춘다.
뽀얀 모래와 고운 호수 모두 바람이 만든 결의 리듬으로 춤춘다.

②쿠바 아바나(Habana)

8km에 달하는 아바나의 방파제인 말레콘에 낭만이 있다면, 모두 이들의 은공이다.
8km에 달하는 아바나의 방파제인 말레콘에 낭만이 있다면, 모두 이들의 은공이다.
미관의 문제를 떠나 위태로워 보이는 건축물이 올드 아바나를 점령하곤 했다.
미관의 문제를 떠나 위태로워 보이는 건축물이 올드 아바나를 점령하곤 했다.
쿠바의 우기인 5월부터 10월 사이엔 간혹 비에 떠내려가는 아바나를 볼 수도 있다. 아바나의 명물, 에그 택시.
쿠바의 우기인 5월부터 10월 사이엔 간혹 비에 떠내려가는 아바나를 볼 수도 있다. 아바나의 명물, 에그 택시.
아바나에서는 팁에 인색하기 힘들다. 연주가 수준급이기도 하지만 여행자를 ‘달러’로 보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에.
아바나에서는 팁에 인색하기 힘들다. 연주가 수준급이기도 하지만 여행자를 ‘달러’로 보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에.

쿠바의 첫인상이자 낭만의 상징인 아바나. 여러 불편한 감정에 따귀를 맞았다. 지리상 올드 아바나(=아바나 비에하)와 베나도, 신시가지로 분류되는 아바나는 분위기나 스타일이 아닌 빈부 차로 격리된 느낌이다. 수영만으로도 족한 말레콘에서 웃통 벗은 쿠바 청년을 보았다. 이를 전망하는 5성급 나시오날 호텔에 올라 칵테일의 질을 불평하는 금발머리 외국인도 만났다. 신분이 뒤집히는 듯한 멀미를 느꼈다. 히네테로(일명 ‘삐끼’)의 사기에 유난히도 시달리고, 끝없는 팁 요구에 털리기도 했다. 한 쿠바 기자가 “여행자가 먹는 음식과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달라”라고 했던가. 사기 치거나 동냥하거나, 쿠바 시민을 그토록 가난으로 몰아넣은 나라에 내내 화났던 것 같다. 개방의 물결 속에 쿠바인의 실제 삶은 안녕할까.

▶추천 대체 여행지 : 멕시코의 마사틀란(Mazatlan)

‘사진발’에 속아도 ‘독고다이’ 아바나다. 이를 대체할만한 도시는 전세계에 없다. 다만 아바나 말레콘의 낭만에 도전장을 내민다면, 마사틀란의 올라스 알타스 해변(Playa Olas Altas Beach)이 세기의 적수. 낙조에 찢어질 듯한 하늘과 해변은 찌릿찌릿하다.

좌로는 낙조에 반사하는 다운타운, 우로는 밀려드는 파도를 낀 거리. 걷는 게 기적 같다.
좌로는 낙조에 반사하는 다운타운, 우로는 밀려드는 파도를 낀 거리. 걷는 게 기적 같다.

③페루 이슬라스 우로스(Islas Uros)

해발 3810m, 볼 빨간 배불뚝이 소녀가 ‘토토라’란 갈대로 짠 섬 위에 부양해 있다.
해발 3810m, 볼 빨간 배불뚝이 소녀가 ‘토토라’란 갈대로 짠 섬 위에 부양해 있다.
전통 배로 이동할 때 기념품이 놓였을 법한 탁자가 포대기로 덮여 있고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전통 배로 이동할 때 기념품이 놓였을 법한 탁자가 포대기로 덮여 있고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작별 시 전통 복장을 한 여인들이 손뼉을 치며 무표정하게 노래를 불렀다.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작별 시 전통 복장을 한 여인들이 손뼉을 치며 무표정하게 노래를 불렀다.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자, 슬슬 퇴근해볼까? 이 아름다운 컷의 속내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자, 슬슬 퇴근해볼까? 이 아름다운 컷의 속내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티티카카 호수의 심연엔 보이지 않는 국경이 있다. 호수는 볼리비아와 페루에 사이 좋게 절반씩을 내어줬다. 페루 편 호수의 하이라이트인 이슬라스 우로스(Islas Uros, 우로스 섬들)에 매료 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콘크리트 대신 갈대(토토라)로 짠 섬에 사람이 산다. 갈대로 집을 짓고 갈대 위를 방방 뛰어다닌다. 외부 침략에 고립을 택한 우로인의 삶의 좌표였다. 7km 떨어진 푸노에서 투어 대신 왕복 보트 티켓을 끊었다. 어? 섬에 도착하자마자 난데없이 그들의 역사를 교육받았다. 이어 원주민 1인당 5~6인의 여행자를 배정해 그들의 집에 반강제적으로 끌려들어 갔다.

세모꼴 오두막 안에 기념품이 깔렸다. 수유하던 여인은 입구에 자수 식탁보까지 깔았다. 가뜩이나 좁은 문은 도저히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릴 싣고 왔던 보트는 사라지고, 푸노로 돌아가려면 다른 섬으로 가는 전통 보트에 올라야 했다. 헤엄쳐서 갈 순 없으니 선택의 여지 없이 추가 요금을 물어야 했다. 자유여행 왔다가 패키지여행에 휘말린 꼴이었고, 텅텅 빈 섬이 많아 물컹물컹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귀가 후 섬에 관해 검색했다. 여행자 사이에서 이 섬이 진짜냐 가짜냐 공방이 한창이었다. 관광객 전시용 섬에서 원주민 커뮤니티가 돌아가며 맞이한다는 설도 있고, 푸노로 출퇴근하는 원주민 무늬 상인이란 설도 있었다. 분명한 건 우로인의 삶이 곧 상품으로 팔리는 듯한 구슬픈 느낌이다. 우로인의 인위적인 민속촌 정도? 섬은 떠 있었고 이들에 대한 애정도 공중부양했다.

▶추천 대체 여행지 : 볼리비아의 이슬라 델 솔(Isla del Sol)

‘태양의 섬’인 이곳은 길이 마을로 통하고 사람을 중매한다. 섬을 트래킹하면 태양처럼 번쩍이는 게 많다. 80여 개의 잉카 유적지도, 끝없이 배후를 치는 풍광도, 봄 내음 나는 원주민의 인사도, 초 단위로 변화하는 호수의 결도. 눈이 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슬라 델 솔에 있는 찰라팜파의 로카 사그라도. 지는 해를 빨아들이는 가부좌의 숭고함이 있다.
이슬라 델 솔에 있는 찰라팜파의 로카 사그라도. 지는 해를 빨아들이는 가부좌의 숭고함이 있다.

④코스타리카 몬테 베르데(Monte Verde)

] 몬테 베르데엔 정글 탐험가 외에도 겁도 없이 세상으로 뛰어드는 강심장들이 많다.
] 몬테 베르데엔 정글 탐험가 외에도 겁도 없이 세상으로 뛰어드는 강심장들이 많다.
Pura vida! "다 좋아!"란 뜻. 여기서 '물가는 빼고'다.
Pura vida! "다 좋아!"란 뜻. 여기서 '물가는 빼고'다.
몬테 베르데의 캐노피 투어는 정글을 탐험이 아니라 쪼그라드는 심장과의 싸움이다.
몬테 베르데의 캐노피 투어는 정글을 탐험이 아니라 쪼그라드는 심장과의 싸움이다.
다른 짚라인으로 가는 길에 몬테 베르데의 야생을 경험할 순 있지만, 모든 정신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집중된다.
다른 짚라인으로 가는 길에 몬테 베르데의 야생을 경험할 순 있지만, 모든 정신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집중된다.

중남미는 장기전이 대부분이다. 식은땀 나는 장기 비행과 티켓 값에 고효율 여행이 사명과 같다. 자연탐사가 목적이라면 어떤 새와 동물을 볼 수 있느냐의 확률까지 따지면서 구두쇠 영감이 된다. 코스타리카는 약 25%의 국토를 공식 보호하는, 자연사랑의 의지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동시에 유럽에 비견할만한 물가 사랑도 강렬하다. 몬테 베르데 국립공원(Monte Verde Cloud Forest Reserve)의 18달러 입장료에 벌벌 떤 이유가 있다. 이미 상점의 물가에 놀라고 여행자의 허브 타운인 산타 엘레나 숙소에 돈을 뜯긴 후였다. 34종의 난초와 134종의 포유류가 서식한다는데, 여행자 눈에 모두 발각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마음의 소리가 납셨다. 니카라과 리오 산 후안을 가봐. 순결한 반값 정글 모험이 가능하잖아. 콜롬비아 민카는 어때. 공짜로 구름 숲 산책이 가능한데…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었다. 대신 몬테 베르데를 관통하는 중남미에서 가장 긴 짚라인(zipline)과 타잔 스윙을 완수했다. 그리고 우리의 주머니는 며칠 밤을 울었다.

▶추천 대체 여행지 : 니카라과의 로스 구아투소스(Los Guatuzos Wildlife Refuge)

코스타리카와의 국경선에서 정글 탐험의 고효율을 외친다. 운림(雲林)인 몬테 베르데와 달리 코스타리카의 생태 인프라를 품은 437.5km²의 열대다우림 지대다. 고립과 공포, 동경과 기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인간과 동식물의 거리 폭이 매우 좁다. 이구아나의 눈동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볼 수 있을 정도다.
인간과 동식물의 거리 폭이 매우 좁다. 이구아나의 눈동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