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낮부터 하나둘 출근… 배달의 민족엔 월요병이 없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우아한 형제들의 기업문화 혁신
배민 설립 6년 만에 식구 350명
함께 제도-문화 만들며 효율 높여
생일 등 기념일엔 2시간 일찍 퇴근
개인 책 구매 비용도 무제한 지원
소속감-주인의식 높이는 원동력
“실적 오를 거라는 착각은 말아야”
“좋은 문화는 동료에 대한 예의”
‘퇴근할 땐 인사하지 않습니다. 휴가에는 사유가 없습니다.’
음식 배달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신생 창업 기업(스타트업) ‘우아한 형제들’이 둥지를 튼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문구다. 우아한 형제들은 올해 들어 퇴근할 때는 눈치를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뜻으로 인사 없이 떠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상사가 엉덩이를 떼지 않으면 직원들도 덩달아 비자발적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를 뿌리 뽑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지난해보다 야근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울러 휴가 가기 전 작성해야 하는 신청서에 사유 기재란도 없앴다. 자기 휴가를 자기가 쓰는 만큼 상사에게 굳이 휴가 사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직원들은 신청서를 낼 때마다 ‘그럴 듯한’ 사유를 만들어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2010년 설립된 우아한 형제들은 회사가 커지면서 점점 임대 층 수를 늘려가다 지금은 이곳 잠실에서만 ‘큰 집’으로 불리는 본사 격의 사무실과 ‘옆 집’으로 불리는 작은 사무실 두 곳을 사용하고 있다.
우아한 형제들은 스타트업 중에서도 혁신적인 기업 문화로 정평이 난 곳이다. 설립 6년 만에 직원 350여명을 둔 거대 스타트업으로 성장했지만, 이 업체는 지금도 더 좋은 기업 문화를 확립해 나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월요일엔 오후 출근, 기념일엔 일찍 퇴근
자유로운 소통을 중시하는 이 회사의 분위기는 디자인실 직원(26명)들이 직접 한다는 사무실 인테리어에서 쉽게 감지된다. 대표적인 장소가 학교 운동장의 계단식 스탠드처럼 생긴 회의실이다. 상급자가 가운데 앉고 양 옆으로 직원들이 둘러앉는 전형적인 회의 구도에서는 창의력이 100% 발휘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학창시절 자유롭게 잡담을 나누던 스탠드 모양을 본떴다.
지난해 도입된 ‘4.5일제’는 우아한 형제들의 특별한 기업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곳의 모든 직원들은 월요일에는 오후 1시(평상시 오전 9시)까지 출근한다. 한창 커나가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아서 직원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는 싶은데, 다른 회사들처럼 수요일 혹은 금요일에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하자니 일하는 사람은 어차피 남게 된다는 게 김봉진(40)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예 월요일 출근을 늦췄더니 직원들의 만족도가 기대 이상이었다. 우아한 형제들에서 구성원(직원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을 엄마처럼 살피는 일을 맡고 있는 ‘피플팀’의 이용화(39) 팀장은 “점심 시간이 오전 11시 30분부터라 사실상 출근 시간은 2시간30분 늦춰진 것인데도 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거나 관공서 일을 처리하는 등 오전 시간 전체를 알차게 쓸 수 있게 됐다”며 “남들은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주말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우울해진다는데 우리 구성원들에겐 월요병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뜻의 ‘지만가’도 우아한 형제들의 자랑거리다. 본인 생일과 결혼 기념일, 배우자ㆍ자녀ㆍ양가 부모님 생일에는 평소보다 2시간 빠른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제도다. 피플팀은 직원들이 이런 특별한 날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도록 일주일 전에 미리 알려주고, 당일에는 눈치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도록 등을 떠민다.
지난해부터는 여성 직원이 임신을 하면 그 날부터 하루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산 위험이 큰 임신 12주 미만과 36주 이상 임신부의 경우 2시간 단축 근무가 법으로 보장돼 있는데, 우아한 형제들은 이를 모든 임신 기간으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안연주(33) 피플팀 선임은 이를 “하루 두 시간을 선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아내가 임신한 남자 직원들의 경우 산전검사에 동행할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우아한 아재근무’도 지난 2월부터 시행됐다. 아내가 출산하면 2주의 출산휴가를 받는다.
또 언제나 자기 계발을 놓지 말라는 뜻에서 책 구매 비용은 무제한 지원한다. 성인물이나 만화, 잡지 등을 제외하면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 볼 수 있는 책은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책 보는 습관을 통해 성장했다는 김 대표가 직접 만든 제도인데, 1년에 100만원 이상을 쓰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
직원들이 직접 만드는 문화 “실적과는 별개”
우아한 형제들에선 이런 모든 제도를 도입할 때 김 대표가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열리는 전사 발표에서 취지를 먼저 설명한다. 이후 해당 제도를 3개월 동안 시험 운영해 본 뒤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당초 취지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 직원들이 만족하지 않을 땐 바로 없어진다.
정보기술(IT) 대기업에서 일하다 2014년 우아한 형제들로 이직한 이 팀장은 이처럼 ‘직원이 다 같이 하는’ 문화가 처음에는 어색했다. 대기업에선 직원이 사무실 청소, 배식, 행사 기획이나 운영 등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이 곳에선 함께 결정하고 나눠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소속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에는 사무실 문이 덜렁거리거나 의자가 삐걱거리는 것을 봐도 막연히 ‘누군가 고쳐주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내 집처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기업 문화와 실적이 직결된다는 해석에 대해선 경계했다. 단순히 회사의 실적이나 성과를 좋아지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제도를 바꾼다면 실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아한 형제들 역시 업무 강도는 다른 회사 못지 않게 높은 편이다. “저희도 실적은 정말 빡세게 챙겨요. 좋은 기업 문화를 가져가려는 건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