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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욱하고 있다면 자존감 낮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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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욱한다면,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말에 ‘내가 무슨 자존감이 낮아? 내가 얼마나 잘났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난다면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은 후 조용히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에게 인터뷰 요청을 넣기 위해서다. 그의 새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코리아닷컴 발행)에 나오는 이 대목은 ‘묻지마 살인’과 보복운전, 아동학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신문 사회면에서 빠지지 않는 이 ‘분노공화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저지르는 것이 어디 강력범죄뿐이랴. 뒤끝 없다고 자처하는 나의 ‘욱’은 주위에 감정의 오물을 튀기고, 소중한 사람들의 내면을 할퀴며, 사랑하는 내 아이의 영혼에 깊은 내상을 입힌다. 그렇게 터트린들 내면에 화평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을 다짐하지만 어느새 분노 게이지는 높아져 나도 어찌할 새 없이 터져버리기가 반복된다. 분노는 그렇게 힘이 세다.
오은영 박사를 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어떻게 하면 ‘욱’을 없앨 수 있을까 물었다. 지난달 발간된 그의 책은 온라인 서점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위협하며 2위에 올라 있다.
-욱하는 것과 자존감이 무슨 관계인가?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개념이다. 자신감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높고 건강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나, 이상한 사람과 섞여 있을 때나, 누가 날 공격할 때나 변화가 없다. 실패, 성공, 위기 상황에서도 별로 편차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좌절을 잘 이겨내고, 누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땡큐’도 잘하고, ‘쏘리’도 잘한다.
반면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난 자존심이 센 사람이야’는 자존감이 낮다는 증거다.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승복을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부정적인 타인의 감정이 나에게 왔을 때, 이걸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꾸 화를 낸다. 충고나 피드백도 잘 안 받아들인다. 내가 자꾸 욱하고 화를 낸다면 나의 자존감과 감정조절 문제를 잘 점검해 봐야 한다.”
-국어사전은 ‘욱하다’를 ‘앞뒤를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다’로 풀이한다. ‘욱’이란 무엇인가.
“딱딱하게 뭉친 감정의 덩어리다. 인간에게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모두 중요하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긍정적 감정’은 표현하는 사람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편안하다. 하지만 슬프고, 화나고, 열 받고, 좌절하고, 불안하고, 속상하고,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은 느끼는 사람도, 그걸 표출할 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불편하다. 그래서 잘 못 다룬다. 특히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억압, 억제하도록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남아서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그게 쌓이고 뭉쳐 있다가 압력솥처럼 폭발하는 게 ‘욱’이다.”
-어른만 욱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도 욱한다. 과도한 학습부담 때문인지 분노가 많고 공격적인 아이들도 많아졌다.
“행위가 아니라 원인을 봐야 한다. 아이가 자주 욱한다면 어릴 때부터 아이의 분노, 화, 울음, 신경질 등 부정적 감정을 부모가 수긍을 안 해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냥 인정해 줘야 한다. 옳다는 게 아니라 ‘네가 화났다는 걸 알겠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공감만으로도 분노는 크게 완화된다. 아이의 격분이나 화를 어른들은 두려워한다.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을 치받는 애가 될까 봐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려 든다. 아이는 감정이 수긍되지 못하니까 억압, 억제하고 그러다 결국 욱하게 된다. 화를 내는 아이에게 부모가 ‘그거 나빠. 너 나쁜 아이야’라는 메시지를 흔히 주는데 좋지 않다. 화가 났을 땐 화도 내야 한다. 화도 중요한 감정이다. 단 적절한 방식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는 ‘욱’을 보자기 같은 감정이라고 말한다. 분노, 섭섭함, 억울함, 화, 적대감, 비장함, 절망, 애통, 슬픔 등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뒤엉킨 채 보자기에 싸여져 있는 게 ‘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욱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자기를 열어 그 안의 감정을 세밀하게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부모(자기 부모)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를 보살피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런데 책에서 나이든 부모님은 절대로 안 바뀌니 사과 받고 싶어하지 말 것을 권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대체로는 부모-으로부터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의존적 욕구다. 본능적인 것이고, 반드시 부모가 만족스럽게 채워줘야 한다. 이것이 결핍되면 두 가지 감정이 생긴다. ‘어떻게 이들이 나에게 이럴 수 있지’ 하는 분노와 ‘내가 오죽 못났으면 부모 사랑도 못 받았을까’ 끊임없이 우울하고 좌절스런 감정이다. 우울했다가 분노했다가의 반복이다. 일평생 의존적 욕구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왜곡되고 과도한 것들이 생겨난다.
지금의 노년 세대는 너무 척박하게 살았다. 밥 안 굶기고,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죽을 고생을 다해야 했다. 그런 부모에게 힘들게 얘기해봤자 노여워하고 섭섭해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감정을 수용 받지 못하는 경험을 또 하게 되면 더 상처가 된다. 하지만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 그걸 소화하고 처리하는 것도 나다. 부모의 사과, 배려, 위로가 도움이 될지언정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내가 나의 감정을 직면하고, 보자기를 열어 ‘나는 어떤 때 화를 내지?’ ‘이게 진짜 화야? 다른 감정이 화로 표현된 것 아닐까?’ ‘나는 왜 불안하면 화를 낼까?’ 등을 디테일하게 스스로 분석해봐야 한다.”
-미국식 육아 방침에 따르다 보면 아이에게 질질 끌려 다니게 되고, 프랑스식 육아 방침을 추구하다 보면 타이거맘이 된다. 육아의 헌법은 무엇인가.
“절대로 아이에게 욱하면 안 된다. 아이들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 건 만고의 진리다. 문제는 아이에게 반드시 지침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Firm and Warm’, 단호하지만 다정한 태도로 지침을 주는 것이다. ‘우리 딸, 약 먹을까요?’ 틀렸다. 그건 선택의 문제도 아니고, 아이에게 결정권이 있는 문제도 아니다. ‘약 먹어라’고 말해야 한다. 지침이란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동의하든 안 하든,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그냥 따르는 것이다. 이걸 헷갈리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애가 징글징글 말을 안 듣는다는 게 모든 부모의 하소연이다. 부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욱하지 않기가 어렵다.
“자꾸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면, 지도나 지시가 효과적이지 않은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거나 동영상을 찍어서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내용만 전달했다고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예컨대 아이가 자꾸 놀이터 안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집에서 나가기 전에 미리 안 된다고 분명히 얘기한다. 지키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말한 후 실제로 단호하게 집행한다. 애가 난장을 쳐도 그 꼴을 보셔야 한다. 애를 비난하거나 ‘너 또 그랬지. 못살겠다’, ‘안되겠다, 너’ 같은 양육포기 선언은 하면 안 된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자전거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나아진다.”
학습은 부모와 아이의 분노가 격돌하는 한판승부의 장이다. 그가 책에 쓴 대로 “아이를 키우면서 성과, 효율성에 집착하면 욱할 일이 많다.” 학원 보내며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면, 분쟁은 불가피하다. “부모는 부모의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과는 아이의 몫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이 없어야 한다”지만, 지키기 어려운 금과옥조다.
-부모들이 자주 욱하는 원인 중 하나가 아이들 공부다.
“공부라는 건 머릿속에 지식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릇이 바로 정서적 안정감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넣어줄 수가 없다. 그릇이 깨지면 내용은 다 샌다. 혼내고, 야단치고, 소리지르는 것은 절대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없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를 많은 양의 지식을 빨리 집어넣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가르치려고 하니까 굴복의 기전이 들어가는 것이다.”
-공부 시키지 말라는 얘긴가.
“과도한 사교육은 심각한 문제지만, ‘공부 시키지 마세요’는 틀린 얘기다. 적절하게 인지적으로 학습을 시키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다만 그릇 안에 많이 빨리 담으려는 것이 문제다. 공부란 뇌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과정이다. 학습을 하지 않으면, 뇌가 잘 발달을 안 하는 건 사실이다. 미·적분을 배우는 과정에서 뇌가 발달하고 나중에 다 잊어버릴지언정 그걸 통해 훗날 살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갈 수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점수와 성적만 생각한다. 10개 중 9개를 틀려도 나머지 하나를 맞추는 과정에서 자기효능감과 자기신뢰감이 생긴다. 그 과정이 공부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은 것을 빨리 넣어주려고 하면 10개 중 9개를 맞고도 루저가 된다.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다. 모두가 공부를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한다. 공부를 한다는 건 설령 꼴등을 하더라도 열심히 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보는 경험은 인생의 기본 자세이자 자산이다. 한 문제도 못 맞췄더라도 머리 쥐어뜯으며 새벽 두 시까지 공부했던 경험이 있다면 과일장수를 할 때도 그 경험에서 도움을 받는다. “공부를 통해 네가 균형 있게 성장하고, 최선을 다하는 걸 배우고, 몰랐던 걸 하나씩 알아가면서 너의 효능감, 너 자신을 신뢰하고 틀린 것을 수정해가는 법을 배우는 거야. 인생도 틀리면서 배우고 잘못하면서 깨닫는 거거든.” 이게 공부의 목표여야 한다. 과학자가 꿈이었다는 아이에게 왜 포기했냐고 물으니 ‘전 틀렸어요. 성적이 안 돼요, 선생님’ 하더라.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야 할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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