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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민주주의 활짝... 인류는 제작자로 진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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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로봇도 만들고 드론도 만들 수 있다고요?”
처음 구경한 아두이노는 신기했다. 아두이노는 신용카드 크기의 단일 기판 초미니 컴퓨터다. 컴퓨터에 연결하고 센서, 모터, 스위치 등을 달아서 원하는 것을 만든다. 컴퓨터 언어를 몰라도 누구나 쉽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 사람이 다가오면 자동으로 켜지는 조명, 애완동물에게 정해진 시간에 먹이를 주는 장치, 화분의 흙이 마르면 물 주라는 트윗을 보내는 장치 등등…. 정품은 3만원대, 기능은 같고 싼 호환보드는 몇 천원이면 살 수 있다.
17, 18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만드는 사람들의 축제, 메이커 페스티벌에서 아두이노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관객들은 들어올리면 자동으로 뚜껑이 열리는 센서컵을 만들었다. 유치원생 꼬마도 만드는 데 1시간이 안 걸렸다. 아두이노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부품과 회로가 공개된 오픈소스 하드웨어다. 라즈베리 파이(빵 이름이 아니다), 비글보드 등도 아두이노처럼 로봇이나 드론의 두뇌 역할을 하는 또다른 오픈소스 하드웨어다.
이번 메이커 페스티벌에는 목공, 바느질 등의 수공예부터 3D프린터와 레이저커터, 아두이노 등을 사용해 만든 디지털기술 창작물까지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취미로 재미 삼아, 혹은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 제품을 전시하고 팔기도 했다. 잔을 내려놓거나 건배할 때마다 LED 조명이 반짝이는 맥주잔,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술 마시는 로봇 등 재미있는 물건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두이노 센서컵, 움직이는 로봇, 생활 목공, 3D프린터로 장난감 만들기 등 체험 행사, 직접 만든 드론을 갖고 나와 마지막 1대가 살아남을 때까지 공중전을 펼치는 ‘드론 파이트 클럽’, 전자기술을 활용해 만든 자작 악기 경연 대회 등 흥미로운 이벤트도 함께 진행됐다. 드론 대항전은 스릴 만점이었다. 참가한 선수도 구경하는 관중도 열광했다. 자작악기 경연대회의 1등은 팔에 붙이는 건반처럼 생긴 전자기타 ‘암잼(ArmJam)’으로 강렬한 헤비메탈을 연주한 임지순씨가 차지했다.
이번 메이커 페스티벌은 최근 전세계적 트렌드로 떠오른 메이커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을 중심으로 여러 유관 기관과 단체가 함께 마련한 축제다. 여기서 ‘메이커’는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브랜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만드는 사람, 개인을 가리킨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 출판사 오라일리가 2005년 ‘메이크’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오라일리 부사장 데일 도허티가 주창한 개념이다. 2006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메이커 축제인 메이커페어를 시작했다. 올해 4월 행사는 관객이 15만 명을 넘었다. 이 페어를 효시로 전세계에서 크고작은 메이커페어가 생겼다. 한국에서도 2012년부터 매년 10월 메이커페어가 열리고 있다.
만들기는 도구를 만드는 인간, ‘호모 파베르’의 본능이고 유사 이래 인류가 쭉 해온 것이지만 요즘의 메이커운동은 손쉬워진 디지털 제작기술과 도구를 활용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기술 발달과 공유(오픈소스) 덕분에 개인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기술민주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가정용 3D프린터 가격은 2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간단한 생활소품이나 부품은 이걸로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 사용법도 쉽다. 3D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의 설계도 파일이 올라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원하는 모델을 골라 내려 받은 뒤 SD카드에 담아서 기계에 꽂고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덕분에 장인의 숙련된 솜씨나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사서 쓰는 소비자에 그치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생산자로 바뀌는 중이다.
더 크고 정교한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싼 장비는 그런 장비들을 갖춰 놓은 메이커스페이스에 가면 무료 또는 아주 싸게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는 전국의 도서관, 미술관, 주민센터 등에 정부가 만든 무한상상실 56곳을 비롯해 팹랩, 테크숍 등 민간에서 운영하는 메이커스페이스가 계속 늘고 있다.
메이커운동은 기술덕후들만의 취미가 아니다.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망치 한 번 잡아본 적 없고 전자공학을 전혀 모르던 사무직 노동자가 만든 수중탐사용 드론이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오픈로브를 설립한 데이비드 랭이 주인공이다.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된 뒤 ‘멘붕’에 빠졌던 그는 90일 만에 회사를 설립했다. 자금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았다. 올해 가을 출시될 오픈로브의 제품 ‘트라이던트’는 물속 100m까지 들어가 빠르게 헤엄치며 수중 탐사 영상을 찍어 보내는 원격조종 드론이다. 무게 2.7kg의 이 장비는 개발부터 완성까지 수많은 메이커들이 참여해 과정을 공유했다. 설계도가 공개돼 있기 때문에 파일을 받아 따라만들 수 있고 키트를 사서 조립할 수도 있다.
디지털시대 새로운 만들기 문화의 기반은 공유와 협력이다. 만드는 방법과 도구는 오픈소스다. 인터넷 검색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쓰면 된다. 파일이므로 수정할 수도 있다. 싱기버스, 인스트럭터블스 같은 사이트에는 전세계 만드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별의별 만들기 방법이 모여 있다. 자기가 만든 것을 올리면 다른 사람이 의견을 보태고, 그것을 반영해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메이커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고 함께 만드는 데 열중한다. 문외한부터 전문가까지 누구나 환영하는 친절한 공동체다.
만들기는 즐거운 놀이다. 지겨운 노동이 아니다. 서울 평창동의 토탈미술관이 지난달 23일 시작한 전시 ‘디자인 없는 디자인’은 누구나 하는 열린 디자인을 표방한 워크숍 중심의 행사다. 한평 집짓기부터 가구, 신발, 3D프린터 등을 만드느라 미술관이 작업실처럼 변했다. 큐레이터 신보슬씨는 미술작가 임도원씨가 진행한 워크숍에서 자신이 쓸 3D프린터를 직접 만들었다. 그는 “만들어보니 몸과 손 쓰는 법을 많이 잊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며 “낯설지만 재미있다”고 말한다.
재미 삼아 만든 것이 꽤 근사하다면 창업을 해서 제품으로 팔 수도 있다. 메이커운동이 1인 제조업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엔진이 될 거라고 전망하는 근거다. 이 점에 주목한 미국의 정부는 2014년 백악관에서 직접 메이커페어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여러분의 DIY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커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다. 술친구 로봇 ‘드링키’를 만든 박은찬씨는 자신을 ‘행복물건 개발자’라고 소개한다. 드링키는 앞에 사람이 있으면 팔을 뻗어 술잔을 내민다. 술을 따라주면 마시고 얼굴에 발그레 불이 들어오고 고개를 흔들며 좋아한다. 결혼 1년 전 크리스마스에 혼자 삼겹살 집에서 술 마시다가 생각해낸 ‘드링키 1’의 동생으로 ‘드링키 2’도 만들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만든 이 흑기사 로봇의 주량은 소주 다섯 잔이다.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물건을 만들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경제적 자립도 하는 게 그의 꿈이다.
메이커들이 열어가는 세상을 탐험해보자. 누가 어디서 무엇을 만들고 있고, 그것은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흥미로운 신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메이커가 되고 싶다면
만들고 싶지만 기술도 지식도 도구도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면? 만들기 도구와 장비를 갖춘 공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는 사이트를 소개한다.
메이커 스페이스에 가면 3D프린터, 레이저커터, CNC 같은 디지털 제작장비를 누구나 무료로 또는 아주 싸게 사용할 수 있고 사용법을 배울 수도 있다. 메이커 커뮤니티는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기술과 지식을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만드는 방법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메이커들은 자신이 만든 것의 설계도와 제작 과정을 사이트에 올려 공개한다. 수공예, 요리, 목공 DIY부터 로봇이나 드론, 자동차, 비행기, 인공위성 제작까지 별의별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골라서 내려 받아 따라 하면 된다. 파일이므로 수정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
메이커 커뮤니티
오픈소스 사이트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로봇부터 드론, 인공위성, 우주선까지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디지털 기술과 도구의 대중화,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는 오픈소스 문화 덕분입니다. 세계적 트렌드인 이 '메이커운동'을 살펴보는 기사를 격주로 목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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