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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 칼럼] 한국관료제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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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며칠 동안 한국에서 벌어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관찰해 왔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구매했던 제품이 귀중한 가족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살아남은 이들이 겪어야 할 죄의식과 상실감을 당사자들 이외에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은 정부의 태도다. 그동안 정부의 대처 방식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국회의원의 종용에 이를 거부하는 장관의 눈빛에서 냉혹한 형식주의와 기관 보호주의에 사로잡힌 비인간성을 본다. 아마도 ‘왜 나 혼자만 사과해야 하느냐’라든가 ‘사과하면 책임을 떠맡게 된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 터무니없는 것은 이 사태는 기업과 개인의 문제로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발상이다. ‘국가개입이 온정주의를 불러온다’는 장관과 관료들의 언급에서는 상황판단 상실증을 보게 된다. 개발독재 시대부터 시작된 기업에 대한 온정주의는 잊어버린 채, 정작 정당한 요구에 대해 온정주의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업에는 걸핏하면 수조원씩 퍼부을 정도로 관대하면서, 억울한 시민의 정당한 기본적 요구를 온정주의의 함정으로 보는 것은 마치 정당한 요구에 응하는 것을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며, 심각한 대국민 불감증이다. 이번 사태는 기업 편향적 한국 관료들이 얼마나 국민 중심적 사고가 결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관료제는 전시성 행정에는 능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면피성 행정 요령이 늘어났다. 국회에 대한 면피, 여론 수렴을 빙자한 네티즌에 대한 의존, 정기적 정권 교체에서 오는 연속성 상실 등으로 한국 관료제는 예방적 행정이나 종합적 행정을 소홀히 해왔다.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모든 기관이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정무적 기능을 수행해야 할 장관조차 일개 관료의 행태를 보인다.
이번 사태는 복수 부서가 관련되어 있어 행정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때 정부 전체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검토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세월호 사건이 전통적인 안전사고라고 인식돼 국민안전처가 마련됐지만, 정작 국민의 건강이 관련된 복수 부서의 조정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무총리나 국무조정실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알 수 없다. 전반적인 국무를 조정한다는 기능을 맡은 기관이 수백만에서 천만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여겨지는 사태가 발생할 때 조정의 필요성을 한번도 느끼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후 형식적 법 논리를 앞세워 검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펴기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우선시하고 이 사건이 가져올 향후 파장을 고려했더라면 당연히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야 했고. 최소한 국무총리의 관심 사안이라도 돼야 했다. 특히 피해자 신고가 시민단체에 의해 진행됐다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 에볼라 사태나 지카바이러스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관심과 언급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기업 한두군데가 무너지면 국가적 관심사가 되지만, 수백만이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사태는 전 정부적 관심사가 되지 않고 부처 간 책임 공방으로 남아도 되는지 묻고 싶다.
민주화 이래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법 절차 무시되면서, 정작 급할 때는 법 형식주의를 내세우는 행정문화와 여기서 초래되는 소극적 책임 회피 행정 행태로는 예방적 행정은 꿈도 꾸기 힘들다. 한국의 행정은 개발독재 시대 행정의 독주라는 극단에서 극단적 소극주의로 치닫고 있다. 시장화와 법치주의가 국가 기능의 축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화 속에서 미시적 수준 근대화가 진행되는 한국 실정에서 찾아가는 행정, 일상적인 삶을 살피는 현장 행정과 미래를 대비하는 예방적 행정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정치와 기업 사이에 끼어 위축된 한국 관료사회에 지속성과 중립성 그리고 종합성 확립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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