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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덕 칼럼] 규제의 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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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규제만큼 자주 들리는 용어도 없는 것 같다. 연일 대통령과 정부는 규제개혁의 나팔을 분다. 규제개혁장관회의도 그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당당히(?) 대통령의 5ㆍ18 기념식 불참 사유로 언급될 정도다.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것은 현 정부가 사용하는 담론의 강도다. ‘개혁’으로는 그 느낌이 모자라는지, ‘철폐’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듯하더니, 요즘은 ‘파괴’나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단어들이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과거 유럽 파시즘 시대의 표현인 ‘잡초제거’까지 등장했다. 어느새 이 규제라는 단어의 어감은 우리 사회에서 진정 부정적인 것이 돼가는 느낌이다. 마치 규제는 우리 경제 전체를 병들게 하는 잡초이고 이것을 뿌리째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인 듯하다.
하지만 규제 정책들이 과거 어떤 목적과 맥락에서 탄생했는지 살핀다면,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했던 19세기 중엽 유럽은 시장 기능의 자율성을 믿으며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주의 이념을 따르고 있었다. 경쟁 자본주의 시대라 많은 학자가 명명했던 이 시기에, 정부는 경제 주체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첫 번째 큰 불황을 맞았던 19세기 말에 이르러 상황은 변했다. 이 불황에 대한 타개책이었던 기업 합병, 생산 단위 대규모화, 그리고 은행과의 유착은 거대 기업을 출현시켰고, 자연스럽게 이들은 시장에서 마치 공룡과 같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그들보다 규모가 작은 사업자들이나 후발 주자들에는 불공정한 것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이때 시장에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그 공룡들에게 핸디캡을 채웠던 것이 바로 경제 관련 규제의 시작이었다. 이 시기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가장 잘 알려진 초기 경제 규제의 예다. 이 법 아래에서 당시 세계 최대의 석유 재벌 록펠러의 초대형 정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은 34개의 사업 단위로 강제적으로 분할되었다.
시장에서의 공정성 확보와 더불어, 정부의 경제 규제법들이 가졌던 또 하나의 목적은 국민경제에 피해를 초래할지 모를 기업 또는 금융기관의 방만한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경제대공황 시기 미국의 글라스-스티겔 법은 대표적인 규제정책으로 꼽힌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전무후무의 경제위기였던 1929년 대공황은 뉴욕 증시 폭락으로 시작되었다. 실제로 그 직전 미국의 상업은행들은 예금계좌에 예치된 고객의 돈들을 긁어모아 주식에 투자하면서 증권 시장을 과열시켜 놓은 바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 과열을 경제위기의 발병 요인으로 진단하고 금융권 규제에 착수하게 된다. 이 노력의 결실이었던 글라스-스티겔 법은 일반 상업은행이 본격적인 투자행위, 특히 증권 거래를 못 하도록 규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그 결과 당시 미국 최대 금융 회사였던 J. P. 모건은 투자부문을 포기하고 일반적 은행 업무를 담당하는 상업은행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그 부문은 새로이 분리된 모건 스탠리라는 증권회사의 몫이 되었다.
글라스-스티겔 법은 친기업적 규제 혁파를 내세웠던 레이건 정부 시대에 이르러는 공격 대상이 되었다. 미국 금융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해 시장 활성화를 막는 주범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공격과 함께, 그들의 꾸준하면서도 대대적인 로비로 인해, 결국 이 법은 1999년 최종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후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던 2008년, 미국의 금융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새삼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다. 금융기업들의 과도한 금융상품 남발이 야기했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오바마 정부가 그들에 대한 철저한 감독을 골자로 하는 규제 법안을 다시 마련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과거의 특정한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규제를 현재 상황에서 재고 및 비판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며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재고와 비판에는 분명한 기준 또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장에서의 공정성 확보와 기업의 방만 운영 방지라는 원래의 취지에 해당 규제 장치들이 여전히 부합하는지가 될 것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국민경제 전반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 또는 집단에 미치게 될 영향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이런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파괴, 혁명, 잡초제거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모습은 자극적 선전선동에 더 가깝다. 이번 규제개혁 논의가 소위 신산업 분야에 집중되어 있지만 결국에는 투자자나 유력 기업들의 편의 봐주기일 뿐이라는 일각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최근 ‘선동’은 그 이상의 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규제가 경제를 옥죄는 근원으로 부정적으로 형상화되면 될수록, 유연함의 이미지는 더욱 긍정적인 것으로 변한다. 이런 규제와 유연성의 명암대비 기법은 총선 이후 주춤해진 정부의 노동법 재추진을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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