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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브로커들 어찌나 달라붙는지 진절머리 났다”

입력
2016.05.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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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형 사유는 있었지만…”

가맹점 업주ㆍ가족 탄원서 제출

도박퇴치자금 등 여건은 충분

전관들에 “무리 말라” 경고

재판부 3차례 바뀐 관심 사건

집유였다면 의혹 짙어졌을 것

“로비 소문에 심적 부담 더해”

뒤탈 우려 더 엄격하게 판단

판사들 “모임 갈 때도 면면 체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운호 대표 측이 앞서 변경된 두 재판부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문은 들었다. 뒤탈이 날 수도 있겠다는 감이 왔고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

지난달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항소심 선고를 했던 J 부장판사는 10일 한국일보 기자를 만나 이 사건 선고를 앞두고 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네이처리퍼블릭 가맹점 업주들과 가족들이 정 대표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고 도박퇴치자금으로 2억원을 내놨으니 형량을 줄여줄 요소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감형 사유가 분명히 있었지만 정 대표에게 집행유예가 아니라 실형을 유지한 재판장은 매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실형 선고를 하지 않았다면 3차례나 바뀐 재판부가 모두 전관 변호사의 로비에 넘어갔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졌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J 부장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면 어떤 오해를 받았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며 “다른 판사들은 나를 ‘(목숨을 잃을 뻔한) 용궁 다녀온 토끼’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도 재판과정에서 느꼈던 부담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J 부장판사는 지난달 한 친목모임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이미 재판부가 두 번 바뀌었다. 브로커들이 얼마나 달라붙었는지 진절머리가 났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실제로 J 부장판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법정에서 변호인들에게 경고까지 했다. 지난 2월 24일 재개된 정 대표의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서 그는 정 대표를 변호한 최유정 변호사와 대형로펌 소속 Y 변호사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다. J 부장판사는 “이는 다른 재판부나 지인을 통해 재판과 관련된 로비를 펼치는 등 정해진 변론 활동 외의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실제로 내가 사건을 맡은 동안 조용했다”고 말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비리 의혹과 각종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네이처리퍼블릭 본사를 압수수색 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비리 의혹과 각종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네이처리퍼블릭 본사를 압수수색 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그는 변론기일 다음날인 2월 25일 검찰의 ‘적의처리’(법원이 보석을 허가하면 수용하겠다는 의사) 의견에도 정 대표에 대한 보석신청을 기각했다. 풀어줄지 말지는 빨리 알려주는 게 좋고 앞선 재판부가 오래 전 심문해둔 기록을 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달 8일 정 대표에게 집행유예가 나올 것이란 일각의 예상을 깨고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앞서 정 대표가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을 때에도 일부 법원 관계자들은 “딴짓하는 사람들 때문에 집행유예도 가능한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된 측면이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검찰 수사로까지 번진 이 사건을 씁쓸하게 바라봤다. 자신이 재판했던 사건에 대해 로비 의혹이 불거지고 당시 변호인은 수사선상에 오른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이에 대해 “최근 일부 판사들은 동창모임을 가더라도 참석자 중에 문제될 만한 사람이나 브로커로 보이는 사람이 없는지 알아보고 나간다”며 달라진 법원 분위기를 전했다. 전관과 브로커 등이 판쳐온 법정 안팎의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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