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전현직 판검사들이 말하는 브로커의 유혹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지인 만나는 자리 나가보면
이상한 사람들 낄 경우 많아
약속할 때 동석자 확인하기도
한 번에 큰 건으로 연결되기보단
자잘한 모임서부터 엮이기 시작
“판사가 (사석에서) 변호사의 청탁에 손사래를 쳐도 ‘섭섭하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법조계 불문율이다. 문제는 법조인이 아닌 브로커 등 일반인과 마주했을 때다. 만난 자체만으로도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고위 법관 출신인 A 변호사는 현직 판사가 법조 브로커들과 친분을 이었다가는 법관의 법리 판단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원칙을 아무도 믿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8일 강조했다.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도박사건 항소심 재판장이 배당 당일 법조브로커와 만나 끝내 사표를 내는 등 파장이 커지며 전ㆍ현직 고위 법조인들이 판ㆍ검사들의 처신에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직자가 사법처리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오해의 빌미를 제공할 정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며 ‘검은 접대’를 피해온 방법들을 털어놨다. 검찰 내부에선 최근 의심스러운 이들이 접촉해 오거나 예기치 않게 동석한 경우 적어내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등 분위기가 엄격해지고 있다.
A 변호사는 “현직 때 지인과 만날 때 ‘당신 말고 누가 또 나오느냐’고 꼭 물었다. 얼버무리거나 조금이라도 내 사건과 관계된 사람이 나온다고 하면 못 간다고 양해를 구하곤 했다”고 말했다. 법복을 입은 수십년간 까다롭게 자리를 가렸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명함을 주고 받은 동석자 중 하나라도 내 사건을 언급해 버리면 화를 버럭 내고 나갈 수도 없고 그냥 ‘어, 어’하다가 청탁 받은 꼴이 돼 버린다. 말을 꺼낸 이가 주변에 무슨 얘길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부탁을 한 사람이 밥값이라도 내면 향응을 받았다는 구설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과거 법원행정처에 몸담았을 때 법원서 생긴 문제들을 보면 다 이런 경우였다. 판사가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향응 받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특수통’ B 부장검사는 부적절한 인사가 동석하게 되면 “자리를 잘 못 왔다”고 ‘돌직구’를 던지고 뜬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자기 돈으로 골프치자고 해서 나가면 이상한 사람들이 낀 경우가 많아 굉장히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며 “그 후 골프를 접었다”고 했다. B 부장검사는 부모와 친인척을 통한 압력에도 선을 그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화오면 받아줘라’는 부모에게 ‘내 번호는 왜 알려줬냐’고 화내기도 했다”며 “부모, 친인척이 전하는 얘기에 응하기 시작하면 한 없이 말려든다. 시골에선 금방 소문이 난다”고 했다.
후임 근무자에게 피해야 할 인사들을 적은 ‘블랙 리스트’를 넘기는 현직 법조인들도 있다. C 부장검사는 “서울이야 워낙 브로커가 많아서 힘들지만, 지방 근무하면 조심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후임자에게 반드시 정리해서 넘겨 준다. 어느 선까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건 인수인계의 핵심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A 변호사 역시 “친인척이 상경해 건네는 물건은 사소해도 받으면 안 된다. 사건 당사자가 줬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맡았던 특수통 D 부장검사는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등 명함을 파서 현직 판검사나 변호사와 친분을 과시하는 이들은 브로커라고 단정지어도 된다고 귀띔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E 변호사도 법조인과의 인맥을 늘어놓는 자는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 변호사는 “10년 전인가 한번 만난 사람이 동료 판사의 얘기를 하기에 연락을 끊었다”며 “그가 판사라는 내 권위를 팔아 먹으며 수수료를 챙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고 있을 때는 골프 모임 등 사적인 자리를 극히 꺼린다는 F 부장검사는 말했다. “브로커와의 연루는 한 번에 큰 건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고, 자잘한 모임에서부터 점차 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