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칼럼] 가정의 달, 휴식 있는 교육을 생각한다

입력
2016.05.08 09:19
놀이활동 학교로 지정된 대전 갈마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갈마초등학교는 하루에 50분씩 놀이시간을 운영한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놀이활동 학교로 지정된 대전 갈마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갈마초등학교는 하루에 50분씩 놀이시간을 운영한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5월, 의미 있는 날이 많지만 며칠 사이로 이어지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때문에 가정의 달로 상징된다. 사회의 기초인 가정의 의미를 새롭게 하면서, 어린이와 어른을 함께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한다. 그러나 부모세대의 탐욕으로 인해 점차 경쟁사회로 몰리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난 5월 3일, ‘쉼이있는교육 시민포럼’은 ‘학원 휴무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첫 구절은 아이들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균형을 상실하였습니다. 어른들의 노동시간도 40시간이 법적 기준인데 한창 약동해야 할 학생들이 책상 앞에서 하루에 12시간, 주당 70~80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녁도 없고 주말도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함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역설적입니다. 학습효율은 핀란드의 절반 수준이고 학습효능감은 바닥권입니다. 행복지수는 최하위 수준입니다. 과도한 공부로 인해 건강, 정서, 관계, 창의성이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았지만 아이들의 휴식 없는 환경은 아주 심각하다. 매일 밤늦게까지 과외에 매달린 아이들은 휴일도 없다. 학생들에게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 된 지 오래다. 한국 학생들이 공부에 얼마나 내몰리고 있는가는 핀란드와의 비교에서 잘 나타난다. 만 15세 학생의 주당 공부시간은 핀란드가 38시간 28분인데 한국은 69시간 30분으로 주당 30시간이나 많다. 그 때문인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은 1, 2위를 놓치지 않지만, ‘학습효율화지수’는 OECD 30개국 중에서 밑바닥을 치는 24위다.

학습효율이 낮은데도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은 왜 그럴까. 공부에 매달리는 시간 때문이다. 쉴 새 없는 공부 닦달이 부모에게 안도감을 줄 지 모르지만, 한창 뛰놀아야 할 아이들은 멍이 든다. IMF 외환위기 이후 더욱 확대 심화된 신자유주의는 교육에도 경쟁체제를 끊임없이 재생산 강화시켰고,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아 주말을 빼앗아 버렸다. 경쟁의식은 선행학습과 반복학습에 아이들을 내맡겼다. 전국 고등학생 63%가 일요일에도 학원에 간다는 통계는 이를 방증한다. 여가 선용과 상상력으로 ‘건강과 감성과 관계와 창의성’을 꽃피울 시기에 성적 위주의 ‘학습노동’에 몰두토록 한 것은 일종의 청소년 학대다.

학생들을 과외와 심야학습으로 내모는 것은 과도한 입시경쟁 때문이다. 입시경쟁은 증층화돼 있고 계층간 연쇄성도 갖고 있다. 대학 입시는 중등교육과 초등교육을 제약했고, 학생들을 불안심리와 탐욕의 희생물로 전락시켰다. 사교육의 범람은 학생들의 시간과 건강을 빼앗아갔고 공교육의 점진적인 붕괴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건만, 이를 수습해야 할 교육 당국은 이 초미의 관심사에 손을 놓고 있다.

사교육의 공헌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학생의 불안심리를 이용, 사교육을 가속화시키는 작금의 상황은 자정ㆍ자숙을 요청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국회가 ‘입시경쟁이라는 절박한 조건을 이용하여 학생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학원산업의 ‘무한정한 욕망’에 ‘보편적 입법’으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학원휴일휴무제는 학부모들도 95%가 찬성한다.

그 동안 한국은 선진국 뒤에서 모방성 산업화를 이룩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발상과 창의성 없이는 우리 앞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세계에 당당히 나서려면 창의적인 발상과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천지창조 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듯, 창의적 인간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휴식(recreation)이 재창조(re-creation)인 이유다. 창의적인 인간으로 키우려면 ‘학습노동’에서 해방시켜 상상력을 구가하는 휴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 학원의 심야 및 휴일 영업을 금하는 법을 제정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