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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덕 칼럼]양적완화와 구제금융

입력
2016.05.05 14:36

정부가 특정업종 재편을

굳이 ‘양적완화’라고 부르는 것은

정책 실패를 감추려는 계산 아닌가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조차

공공성보다 정략이 우선되다니

양적완화가 갑작스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느낌이다. 지난 주, 개념 이해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있었던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이 정책의 실행을 위한 정ㆍ관계의 본격적인 움직임에 갑론을박이 오갔다. 학계와 경제전문가들의 논의는 이의 적정성 및 실효성을 두고 이미 가열된 상태다.

양적완화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 통화정책의 일종이다. 특히, 통화량을 늘리는 보통의 방식인 기준금리 인하 등이 효과를 내기 어려울 때, 중앙은행이 직접 화폐를 대량으로 공급해 경기 부양에 나서는 ‘비상’ 정책이다. 이는 바로 지난 세기까지도 사실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물론, 정부가 통화량 조절을 통해 국가 경제에 관여한 것은 17세기 말 영국 중앙은행 설립 시기로까지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 세계경제대공황 이후로는, 통화량 조절이 전체 국민경제 운용에 핵심이 되었다.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는 주로 할인율 인하, 즉 상업은행들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에 대한 이자율을 낮추는 방법을 통해 통화량을 늘림으로써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할인율 인하는 여전히 일반적 통화정책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서,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찍어서 시중에 투입하는 방식, 즉 양적완화로는 볼 수 없다.

양적완화 정책은 현세기 일본이 원조였다. 일본은행은 2001년 상업은행들이 보유한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특이한 방법으로 5년간 약 40조엔이라는 거대한 액수를 시중에 풀었다. 이는 장기간의 경기 침체를 탈출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궁여지책이었으며, 2013년도 이후에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라는 기치 아래 더 큰 규모로 시행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양적완화 시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펼쳤던 정책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경제의 전반적 회복을 목표로, 세 차례에 걸쳐 총 4조달러 규모의 천문학적인 돈을 역시 주로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뿌렸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이번 계획은 위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양적완화 정책과는 꽤나 달라 보인다. 그것은 전반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특정 기업, 특히 조선과 해운업종 재편 비용에 사용할 자금 확보를 위함이다. 당연히 국내외의 많은 경제학자 및 전문가들은 이를 ‘양적완화’로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실기업 회생을 위해 자금을 대는 ‘구제금융’ 정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의식했는지 정부는 양적완화 앞에 ‘한국형’이라는 말을 미리 붙여놓았다.

우리 정부가 사실상의 구제금융 정책을 굳이 양적완화라는 개념을 써서 부르는 이유에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선전적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양적완화 정책은 나름의 성공 신화를 쓴 바 있다. 현재 일본 경제는 최소한, 기나긴 저성장의 터널은 빠져나온 상태로 볼 수 있다. 미국 역시 2008년 위기 국면을 벗어나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양국의 이런 경제 호전에 대한 양적완화 정책의 기여 여부를 두고는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양적완화와 경제위기 탈출이 연결되는 역사적 사례는 최소한 확보된 셈이다. 게다가, 이 표현은 허리띠 졸라매기 동결 경색 등 경제 위기 시대의 ‘꽉 죈’ 느낌의 담론들과는 반대로, 성장 확대 풀림 등의 이미지를 생산하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준다. 이것이 모 당의 지난 총선 구호였던 것은 이유가 있다.

반대로, 구제금융이라는 용어에 대해 국민이 갖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그 이전의 국내외 구제금융 정책 사례들에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구제금융의 목표이자 결과였던 구조조정에는 항상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녔다. 우리 국민은 또한 ‘구제’금융이 부실기업의 소유주나 채권단 같은 기득권층 ‘살리기’로 귀결되는 경우도 자주 목격했다.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실상의 구제금융 정책을 정부는, 게다가 서둘러 처리해 버리려는 자세다. 그들의 계획은 한국은행 발권력을 통해 바로 돈을 구조조정에 투입하는 속전속결 전략이다. 사태의 시급함을 외치며 정부는 국회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관을 우회하려 한다. 수년을 끌어온 이 문제가 왜 총선 직후 갑자기 시급해졌는지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국회에서의 논의와 동의 과정이 생략된 상태에서, 구조조정 당사자들 모두의, 즉 소유주, 주주, 채권단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생존권이 걸려있는 고용인(雇傭人)들의 입장이 함께 반영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우리 정부는 양적완화 문제가 국회로 넘어갈 경우 따라올 공개적 논의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그 도중 기업 부실화 책임이 정부로 돌아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일까. 물론 정부는 그 나름의 반론이 있겠지만, 이런 실정 공방을 국민 앞에 긴 시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것이 대선을 불과 일 년여 앞둔 시점에서 벌어질 것이라면 말이다. 그들에게는 경제위기 극복과 그 과정에서의 공정성 확보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우선인 것 같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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